"그동안 죄스러웠다. 위에서 시키니까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많이 기도했다.
3.15 의거 추가 증언
" 숨진 김주열 열사 시신, 바다에 버릴때 내가 운전했다."
' 진실은 늘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 처음 행방불명 되고 나서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온 마산 시내를 미친듯이 헤맸습니다.
체포됐으면 경찰서에, 부상을 당했으면 병원에, 죽었으면 그 시신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당시 남원에서 와서 마산상고에 다니던 아들이 깜쪽 같이 사라진 것이죠.
누군가 지금 합포 구청 앞쪽에 있는 연못에 버리는 걸 봤다고 해서 연못물을 다 퍼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오지 않던 시신이 4월 11일 지금 대한통운 앞 중앙동 부두에서 떠 오른 것이죠.
그 당시 시신을 바다에 버릴때 운전을 했던 분이 김주열 열사 기념 사업회에 연락을 해 와서
김주열 열사 묘역을 참배를 했습니다.
천국에서 편안히 잘 쉬고 계시라고 빌었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새벽 묵주기도 15단을 드렸다."
김덕모(76, 마산)씨가 3·15의거 56주년을 앞두고 13일 오후 국립3·15묘역에 있는
김주열(1943~1960)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나오면서 한 말입니다.
천주교를 믿는 김씨는 묘소 앞에 헌화한 뒤 성호를 그어 기도했고, 묘비를 쓰다듬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김주열 열사 죽음에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시신을 유기하는 부분에서 관련이 되었습니다만
그 동안 밝히지 않았던 진실의 일부나마 밝히게 된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친일이나 독재 부역에 관해 직, 간접으로 관련 됐던 분들이
그 자신의 죄나 책임이 크고 작고 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 준
좋은 예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경우가 좀 다르긴 합니다만 김구 선생님을 암살 했던 안두희도 죽기 전
김구 선생님 묘소를 참배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말도 어눌했고,
또 김구선생님 암살의 실제 배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본인으로서는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때 젊어서 자신이 '국가에 충성'한다고 생각하고 또
'애국'이라는 신념과 혈기로 한 행동이 역사에 두고두고 죄인이 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죽었다고 보여집니다.
(죽을 때 다되서 자연사 하지 못하고 '정의봉'에 맞아(?) 죽었습니다.)
전두환의 12.12 같은 사건에 대해서 최규하씨는 침묵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현재 남아 계신 분 중 권력층에 속했던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이 김종필씨일텐데
자아성찰에 의한 관점의 변화나 자신의 삶에 대해 냉철한 비판이 없으면 대다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 시키는 관점에서 삶을 마무리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김덕묘 씨나 안두희의 삶에서 한 개인의 삶이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안두희처럼 정권편에 서 있는 것이 애국이라고 잘못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기사 자세히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89725&CMPT_CD=P0001
▲ 1960년 3월 16일 새벽, 경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버릴 당시 짚차를 운전했던
김덕모(76)씨가 13일 오후 국립3.15묘역에 있는 김주열열사 묘소(가묘)를 참배한 뒤 묘비를 쓰다듬고 있다.
3.15 의거가 일어난 지역은 동피랑이 살아오고 있는 주변이어서 기회가 될때 마다
찍어 놓았던 사진들을 몇장 찾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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