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배춧잎이 시들어간다/ 박희연

생게사부르 2021. 2. 14. 17:45

배춧잎이 시들어간다/박희연

 

 

1.

먹다 남은 배추 겉잎이 시들었다.

속잎이었던 그 겉잎은 싱싱했다.

싱싱한 것을 시들게 만드는 내공은 

내게 있을까 시간에 있을까

돌아 보면 내 삶은 혐의로 가득 차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이 오그라든다.

불안은 종종 표면적을 작게 만든다.

배춧잎이 조글조글 말라붙었다.

 

2.

가까이서 보면 크고 멀리서 보면 작다.

표면적을 작게 만드는 방법 하나

당신과 거리를 두는 일이다.

코로나 19시대의 인류애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균자라는 혐의를 두는 것

 

3.

오래된 습관처럼 해가 뜨고

어제 저녁 먹다 남은 배춧국을 먹는다.

TV에 비친 한 정신병동에서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죽거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죽어나간다.

저 죽음의 이면에도 아랑곳 없이

당신과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우린 너무 많이 배양되었고

너무 오래 변이를 거듭해왔다

 

4.

남은 배춧잎이 또 시들었다.

속잎마저 이울어 더 이상 시들 잎이 없을 때

난 헛헛한 마음에 기침을 한다.

불안이 고조된 열차 안에서

어느새 오래된 습관처럼 사람들이 물러선다

배추는 배추의 불안과 혐의로

나는 나의 불안과 혐의로

당신은 당신의 불안과 혐의로

세계는 세계의 불안과 혐의로

아주 작아져버린 당신이 때때로 그리울 수도 있겠다.

 

 

 

*     *     *

 

 

작년 3,4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운동학원도 휴강을 했습니다.

코로나도 피해야 하지만 운동부족으로 먼저 탈이 날 것 같아 산행에 나섰습니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반 정도 무학산 일부 구간을 다녀 왔지요.

맑은 공기 마시고 몸 근육도 풀고...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반갑습니다' ' 수고가 많으시네요' ' 안녕하세요'

 

작년에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흠칫 피하는 상황

 

'서로에게 보균자라는 혐의를 두면서 거리를 두기'

 

모처럼 산행에 마스크를 벗었다가도 재빨리 마스크를 쓰야했지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한 번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작년 한 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 저 죽음의 이면에도 아랑곳 없이

당신과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우린 너무 많이 배양되었고

너무 오래 변이를 거듭해왔다. "

 

 

표면에 수십개의 돌기를 가진 코로나 실물사진 초저온 전자현미경 단층촬영이며 색상을 입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