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서울로 가는 全琒準/안도현

생게사부르 2021. 1. 30. 10:35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萬頃)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 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琒準)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 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 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영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     *      *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안도현 시인 등단작입니다.

37년 전에 쓰인작품이네요. 이미 올린 줄 알았는데 빠져 있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잘 하는 친구들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자신의 점수를 거의 정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변수가 있는 오차범위정도 안에서

 

이 정도 시를 써 투고를 했다면 특별한 복병을 만나지 않으면

당선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인이 어느정도 알 수 있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대한 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하지만

특히 문학하는 분들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인 역사에 토속적인 정서까지 곁들여 있으니

딱딱한 역사공부가 어려운 사람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로 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라는 객관적 사실을 얼마나 심도 있게 탐구했느냐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질 것입니다만

특히 소설은 더 그러한데...조정래 작가의 ' 아리랑' '한강' '태백 산맥' 작품을 순서대로 읽으면 

바로 우리 역사의 근현대사에 대한 감을 잡을수 있지 않을지...

대신 객관적 역사사실과 허구나 가공을 구분하지 못하면 역사를 왜곡해서 인식할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할 거 같아요.

 

 

' 그대 갈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처럼 

 

 

 

1895.2.27일 서울의 일본 영사관에서 법무아문으로 이송 직전 전봉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