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멀미/ 김충규
새가 숨어 우는 줄 알았는데
나무에 핀 꽃들이 울고 있었다
화병에 꽂으려고 가지를 꺾으려다가
그 마음을 뚝 꺾어버렸다
피 흘리지 않는 마음, 버릴데가 없다
나무의 그늘에 앉아 꽃냄새를 맡았다
마음 속엔 분화구처럼 움푹 팬 곳이 여럿 있었다
내 몸 속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파 놓은 자리,
오랜 시간과 함께 응어리처럼 굳어버린 자국들
그 자국들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때
깊고 아린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꽃 냄새를 맡은 새의 울음에선 순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
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
뻑뻑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
왜 나는 꽃 냄새를 맡고 어지러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늘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물렀던 자리가 움푹패어,
그 자리에 햇살들이 피래미처럼 와글와글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아니, 황금의 등을 가진 고래 한마리가
물결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마흔도 되기전에, 내 눈엔 벌써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사후死後의 어느 한적한 오후에
이승으로 유배와 꽃멀미를 하는 기분,
저승의 가장 잔혹한 유배는
자신이 살았던 이승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 보게 하는 것일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꽃 냄새, 이 황홀한 꽃의 내장,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를 쳤다
<물위에 찍힌 발자국> 실천문학사,2006
* * *
이 시가 블로그에 오르지 않았다니
몇번이나 베껴 써 본 시인데...
시인이자, ' 문학의 전당' 출판인이었던 진주사람 작가는 내가 시에 관심을 가지기 전
2012년에 이미 돌아가셨다. 한창 나이일 마흔 여덟에~
폐결핵을 앓아 지병이 있었다 했으니...
문학을 안 했으면 세상을 더 오래 사는 일과 맞 바꿀 수 있었을지...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쓰지 않으면 혼이 죽은거나 마찬가지니
시 쓰는 분, 문학을 사람하는 분의 운명은 예감같은 거
이 시인이 이룬 문학적 증거
' 고영' 시인이 이어 받아 ' 시인동네' 로 내려온 걸로 아는데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문단 권력, Me too 관련 물의로 8월호를 마지막으로 잡지를 폐간한다는
기사를 봤다
어떻든 뭔가를 만들고 자리가 잡힐 때까지 기반을 닦는 건 어렵지만 없애는 건...
쉬운가? 아님 더어려운가?
자본이, 물질이 대다수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이런 세상에 문학을 붙들고 있다는 일 자체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것이기에... 이해가 가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 이승으로 유배와 꽃멀미 하다 '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 시인...
그래도 이런 시 한편 남기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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