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미주의 노래/ 유혜빈

생게사부르 2020. 9. 8. 13:22

미주의 노래/ 유혜빈

 

 

마음은 고여본 적 없다

 

마음이 예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영영 예쁘게 있을 수는 없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계속 무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이 도대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건 미주와 미주라고 생각 했던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다른 책을  읽다가

 

뒷목위로

 

언젠가 미주가 제목을 짚어 주었던 노래가 흘러 나오고

미주라고 생각 했던 사람이 미주를 바라 보았을 때

미주만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따뜻하다고 말해도 미주의 마음이 따뜻한 채로 있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도

무지 없는 것이라서 마음이 흐를 곳을 찾도록 내버려 둘 뿐입니다.

 

너는 미주의 노래와 만난 적 없다

미주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주의 노래일 뿐이다

 

 

*     *      *

 

 

이 시 처음 읽으면서 박지일의 ' 세잔과 용석' 이  떠올랐다

2020 신춘문예에서 본 것 같은데... 어느 신문이더라.. 찾으니 ' 경향' 이고

작가가 창원사람

심사위원은 신용목, 김행숙 시인과, 김현 씨였다

 

올해 신춘문예 작품 중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블로그 올리지 않았는데

오늘 두개 느낌 비교하면서 올릴 기회가 생겼달까 

 

' 미주의 노래' 가 여성작가고 미주는 미주일 뿐이라면

 ' 세잔과 용석' 은 남성작가가 썼고 ' 하나의 인물이다' ' 사실 둘이다' 라고 해도

결국 세잔과 용석은 ... 온 세상의 세잔과 용석들...

 

 

세잔과 용석/ 박지일

 

 

세잔의 몸은 기록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

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 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개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 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     *     *

 

 

영어이름이든 한글이름이든 한자이름이든

삶은 전쟁터이고

총알이 장전되기도 전에 불발되어 버린 많은 청년들이 생각난다

 

도시의 숲,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던, 틈새를 가늠하던

도시 구석구석에서 자본을 배후로 둔 소모품 같은... 인간, 사람,

특히 편의점 , 택배 , 배달 알바 등등 알바천국으로 내 몰리는 청년들

 

지하철 구의역 김군도 생각나고

실업계 고등학교서 실습나갔갔다 사고를 당한 청년들

용광로에서, 기계 틈에 끼어서, 배를 타고 나간들 실습선에서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 새들의 일회성 날개짓, 접히는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이 시는 코로나 이전에 썼을 텐데)

 

세잔과 용석은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 미주의 노래'는

 

' 마음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는 것이라서'

흐르는 마음 따라 예쁜 사람, 미운 사람

마음이 무겁다 가볍다 할수 없는 일이고

아무리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고 역지사지 해도

결국 미주의 노래는 미주의 노래일 뿐...

 

 

젊은 시인들의 의도는 어떠 했는지

첫 문장을 시작하고 나머지는 글이 글을 끌고 갔는지

어쩐지... 하여튼 나는 그렇게 읽었다.

 

 

 

아무리 효율성을 따지는 바쁜 현대사회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사람사는 동네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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