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우명牛鳴/ 유홍준

생게사부르 2020. 7. 17. 13:03

우명牛鳴 / 유홍준

 

 

진주시 망경동

섭천에 들어와 산 지 삼년 되었어요

 

섭천은 형평(衡平), 형평(衡平), 백정들이 살던 마을이에요 소

를 잡던 사람들이

소를 잡던 손을 씻고

피를 씻고

쌀을 씻고

꽃을 심고 살던 마을이에요

 

오려고 온 게 아니에요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진주에서 가장

싼 아파트, 동신아파트가 아니라

등신아파트죠

 

길을 잃은 소는 밤이 되면 무서워, 무덤으로 간대요

길 잃은 소가 무덤을 찾듯이

나도 이곳엘 찾아 왔어요

 

소를 잡던 이 마을에서 나는 온갖 두려움으로 눈망울을 디

롱거리며 되새김질 되새김질

끊임없이

 

천엽이 생겼어요 당신에게로 가고 싶은 내 무릎뼈는 우슬

이에요

자귀나무에  매어놓은 소는 묶인 자리에서 얼마나 뱅글뱅

글 돌고 또 돌았던지 자귀나무는 형편없이 망가진 나무가 되

었어요

 

울고 싶어

울고 싶어

진짜로 소가 되어 울고 싶어 중고 트럼펫 하나를 샀죠

 

울고 싶다와 불고 싶다는 동의어,

그래서 울고불고라는 말이 생겨났죠

 

그러나 이 아파트 무덤에서는 울고불고가 안 돼요 울고불

고 트럼펫을 불 수가 없어요

무덤의 소가 밤을 견디듯

우명(牛鳴)이라는 트럼펫을 앞에 놓고 나는 견디고 있죠

 

내가 만약 한밤중 망진산 꼭대기에 올라가 트럼펫을 불면

牛鳴 牛鳴

희한하다

어디서 저렇게 구슬픈 소가 우나, 사람들은 의아해하겠죠

 

섭천에 들어와 산지 삼년, 기려섭천(騎驢涉川), 기려섭천(騎

驢涉川), 내가 소가 되어 건너야 할 강은 어디 있나요 내가 소

가 되어 헤엄쳐야 할 삼도천은 어디 있나요

 

진국을 고아 드릴까요 당신

화탕지옥 화탕지옥

벌써 삼 년째 나는 내 뼈를 우려내고 있어요

 

잘못했어요

 

오늘밤도 소가되어 웅크리면

여긴 피눈물 철철 흐르는 무덤

 

불 수 없는 트럼펫을 내려다 보며 섭천의 소가 울고 있어요

웃고 있어요

 

아직도 나를 더 때리고 싶다면 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