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씨/ 조우연
너무 우울한 컵 씨는 귀가 자꾸 늘어난다
아무 울적한 일이 없어도 컵 씨의 한쪽 귀는 자꾸 당겨진다
누가 차 한잔 할래요 하면서 컵 씨의 명랑을 의심하면
컵 씨는 왼쪽귀를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못생기고 과장스
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컵 씨는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하고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컵씨의 진짜 바닥은 밑 하고도 바깥쪽이라 컵 씨 반대편에
서만 컵 씨의 감정을 볼 수 있다
그릇 된 컵 씨는
그릇된 감정들을 녹차 커피 꽃차 등으로 발효시킬수 있다
누가 내 두 귀를 잡고 기울이면 애써 가라 앉힌 내부의 침전
들이 쏟아질까 몹시 불안하다
낯뜨거운 일이 생기면 컵 씨는 귀를 만지는 버릇이 있다
듣는 일은 냉정을 요하는 일이므로 귀는 늘 차갑다
귀가 무능해 지거나 기가, 귀가 막히면 컵 씨는 뒤집어진다
엎어진 컵 씨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한쪽 귀를 자르고 하나 남은 귀로
비로소 온전한 컵이 되었다는 고흐라는 컵 씨 생각이 난다
귀 없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먹는 공사장 그들은
컵 씨라고 불리지 못하고
김 씨 혹은 조 씨 등으로 불린다
귀가 없는 컵씨들의 뜨거운 삶은
울컥하고 곧잘 쏟아지므로 꽉 쥐어야 한다
- 2016 ' 충북작가' 등단
시집 : < 폭우반점> 시인동네 시인선.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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