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권박 안토르포퐈지(anthropophagy)

생게사부르 2020. 1. 13. 20:32

 

안토르포퐈지(anthropophagy)/ 권박 


 

설탕으로 만든 해골과 두개골을 갉아 먹으며 당신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지. 모피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기
를 준 파리의 어느 모피상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니?

*

당신은 내 넓적 다리와 가슴과 뇌장을 식초에 뿌려 먹을 것이라고 한다.
당신의 사람인 나는 내 눈동자와 혀와 불안과 골수와 절망과 심장을 잠 속에 넣었다

고양이를 낳는 태몽을 꾼 다음날의 나는 손톱같은 시간처럼 녹아내렸다
그 시간 안에서 당신은 할퀴고 물어뜯는 소문이고 나는 어찌할 줄 모르는 소문이다

어떤 태몽 안에서는 비가 뼈처럼 내리기도 했다. 고개를 들고 그 뼈를 다 받아 먹은 후
잠에서 깬 나는 폭우치는 밤을 당신이라 명명하며,「밤과 안개」를 읽었다.

나치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수감자가 어떤 수감자의 인육을 먹을 때의 표정을 당신과 나의 관계라고 볼수도 있겠다. 나치의 눈
을 피해 어떤 수감자의 뼈와 피부를 파 헤치는 어떤 수감자의 피골이 상접한
알몸이 당신과 내가 나눈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
시 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 같은 태몽이 나를 이어 붙였다

「밤과 안개」처럼 우리는 잊어버린 것과 잊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교차되었다.
폐허같은 기억과 거부하고 싶은 시간을 오가면서 ,「밤과 안개」는 완성되었지만 우리의 폭력적 관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부족한 사랑은 생명에 지장을 일으키지도 하지만, 훼손된 사랑은 굉장히 맛있기도 하다
그래서 당신은 늘 나를 고파했고, 나는 나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다시 당신에게 살을 내어 주기를 반복했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가짜인 이야기 같은 사랑이다. 

 

 

                                  - 2019. 김수영 문학상

 



*     *     *

 

 

영혼이 자유로운 지성인이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 김수영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들은 강도가 좀 쎄네요. ' 원래 그렇다'고 하면 맞는 말일지 틀린 말일지

 

사람은 내성이라는 게 생기는 동물이라서...

 평소에 항생제를 먹기 버릇하면 나중에는 듣지를 않아서 자꾸 더 강한 처방을 해야하듯이

언어도 내성이 있고 시 역시 그러한데

 

사랑이 cannibalism(食人), Man Eating Myth 에 이르면 더 이상 강한 사랑이나

강한 시란 게 있을 수 있는지...

 

이 시에서는 나찌수용소 얘기가 나옵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봤지만 「밤과 안개」는 보지 못했습니다.

「밤과 안개」는 쉰들러리스트에 비하면 만화수준이라는 평이 있네요.

 

영화나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현실 이상 진실을 잘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밤과 안개」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극한상황에서 반응하는 인간모습을 통해

같은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나 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패전한 일본인들 역시 태평양 상에서 고립되어 그랬다느니, 패전한 일본군대을를 따라 오다

뒤처진 위안부들이 중간에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다는 등

전쟁이라는 인간의 한계 극단에서 그런  경우들이 있었다는 얘기들을 풍문으로 듣긴 했습니다.

 

'설탕으로 만든 해골과 두개골' 로 순화시키기도 했지만

 

'어떤 수감자가 어떤 수감자의 인육을 먹을 때의 표정'

'나치의 눈을 피해  어떤 수감자의 뼈와 피부를 파 헤치는 어떤 수감자의 피골이 상접한
알몸'이 당신과 내가 나눈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
시 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 '

 

" 부족한 사랑은 생명에 지장을 일으키지도 하지만, 훼손된 사랑은 굉장히 맛있기도 하다
... 당신은 늘 나를 고파했고,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다시 당신에게 살을 내어 주기를 반복했다."

 

젊은이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사랑을 포기하는 방식이거나

이해타산으로 거래하는 형식이어서 이성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통해 인간다운 사랑'을 알 기회가 사라지고 있고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기회가 확대되었다고는 해도 결혼한 여성은 살과 피를 내어 줘야만

가정을 유지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가정이 될 수 있으니 ...

 

시인 은 ' 반은 사실이고 반은 가짜'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만

 

에로스적 사랑이든 아가페적인 사랑이든 인간적인 사랑은 소멸하고 있고

AI에 의한 한치 빈틈없는 인간모습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봐야할 지

 

사랑은 감정이고 느낌인데 감정이 생략되어가는 이 시대 사랑의 모습이 나날이 '쎄어진다'라고 할 밖에요.

 

 

 

컴퓨터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시스템이 다 바뀌어 버려서 한참 손을 못 댔네요.

이럴 때 젊은 아이들이 옆에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 탓이기도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보다 몸이 움직여야 하는  나이대라서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 만에 한국 온 딸이 임시방편으로 손질해 주네요.

 

18일 한국 있는 동안도 지 업무가 반 이상인지라 제주로, 서울로, 하동으로, 통영으로... 덩달아 바빴습니다.

 

다행이라면 분위기 있는 찻집 탐방에 맛있는 것 먹으로 다니는 일이었다는 거

스무날 남짓 고국의 공기와 음식으로 충전해 나가면 그곳에서의 생활에 활력이 붙겠지요.

가족의 사랑만큼 질긴 끈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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