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성미정 모자를 쓴 너

생게사부르 2019. 11. 30. 15:52

 

 

모자를 쓴 너/ 성미정



  그녀는 머리를 뚜껑이라고 부르는 늙은 의사를 만났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뚜껑
은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야 합니다 한치의 실수라도 생
기면 뚜껑을 닫기가 어렵습니다 틈새가 벌어지면 수술을
하기 전보다 더 엉망이 됩니다 자 이제 뚜껑을 열겠습니
다 뚜껑이 열리자 취한 새들이 비틀거리며 날아간다 껍
질 벗은 뱀들이 기어코 기어나온다 지느러미 떨어진 물
고기들이 퍼덕거린다 난감해진 늙은 의사는 짐짓 헛기침
을 하며 말한다 괜히 뚜껑만 열어봤군요 아무 이상이 없
어요 뚜껑 속에는 희고 먹음직스런 뇌수가 가득 있어요
늙은 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꿰맨다 마무리로 질
긴 탯줄을 한 번 더 묶어준다 수술이 끝난 후 그녀는 뚜
껑 속으로 스미는 시린 바람 때문에 잠을 설친다 들이치
는 빗방울로 인해 출렁거린다 그녀는 깨닫는다 수술은
모든 수술은 후유증을 남긴다 결국 그녀는 뚜껑 위에 또
하나의 단단한 뚜껑을 눌러쓰고 뚜껑이 열린 세월 속을
걸어다닌다

 

 

*        *         *

 

 

성미정 시인의 시를 처음 본 게 3년 전쯤 되나요?

시교실 사람들이 시쓰기를 어려워해서 사부님이 패러디 해 보라고 내준 과제였어요

 

그때 ' 꽃씨를 사러 종묘상에 갔다' 로 시작되는 ' 심는다' 라는 시였는데

읽어보니 재미 있어서 연이어 읽은게

'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등등

 

한마디로 ' 참 쉽게, 재미있게 쓰시네'가 저의 감상 이었습니다만

그런 방식이 시인의 정체성이고 내공이니 절대 쉬운게 아니겠지요

 

 사학과를 나온 게 또 눈을 끌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시 마다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1994년 현대 시학으로 등단해서 꾸준히 시를 쓰고 있더군요.

' 대머리와의 사랑' '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상상한 상자' 

 

환유를 많이 쓰는데 세간의 파랑에도 아랑곳 없이 꾸준한 자기페이스를

유지하는 개성있는 시인이네요.

 

 

겨울로 들어가고 있네요.

주말 서울 도심은 열기로 추위를 녹이려는지... 시위가 많은 듯 합니다.

필리버스터 얘기가 나오고, ' 우리 아이들 이름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 

어른들 잘못으로 안전하게 자라지 못하고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유아들 이름이 붙은

 

주변에 "뚜껑' 을 여는 대단한 수술을 한 사람들이 몇몇 있어요.

어떻든 수술은 후유증을 남겨서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제 경험으로도 수술은 ' 금간 항아리' 같달까요. 표 안나게 잘 붙여도 칼이 지나간 건 지나간거니까요

 

이전에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 특히 상식이나 합리, 객관적 사고에서 거리가 먼 미성숙한 성인들...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일제 식민시기 좌우이념 대립 시기를 거치는 동안 입에 풀칠하기 바빠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 공부해서 남주나?' 하는 이기심으로 기득권이 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자기만, 자기가족만 잘 먹고 살 수 있다면 남을 희생시키든 불법 편법이든 아랑곳하지 않던

 

그 다음 세대로 내려가면  ' 어른되는 공부'를 학교에서는 시켜주지 않으니 따로 해야하는데

별 철학없이 세상 흘러가는 대로 가다보니 성인이 된 사람들 

 

 

신념이나 가치관 같은 거창한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

 '뚜겅' 을 열어 소금물에 담궈 씻어내고 헹궈 다시 붙여도 변하지 않겠다라고 느낀적이 많았습니다.

 

결국 일정 선을 넘고, 시일이 흘러 사람들이 어떤게 옳고 그른지 판단할 때쯤이면

밑천이 드러나고, 일을 수습한다고 하는 게 자기 무덤 파는 일만 골라가며 하던데...

결국은 끝이 나겠지요. 그게 언제일지가 문제지만

 

내년 대선을 기다려 볼까요?

누구의 밑천이 다 드러 났는지, 바닥을 보이는지....

 

정치 뉴스 잘 보지 않습니다.

TV 도 잘 보지 않습니다

 

채널이 무수히 늘어나 봐야 옷이니 주방가구, 보석 같은 물건 파는 거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보험 파는 거,  건강염려증을 가중시키는 거

 

성적인 노출이 아직은 서구같지 않은

내용이나 구조가 좀은 유치할 수도 있는 중국 고장극....아무 생각없이 보는 게

차라리 위로가 된다는 게 우습네요.

물론 저로서는 휴식 같은겁니다만

 

지금은 ' 대송 소년지' ' 구주 표모록' ' 삼생삼세 십리도화'는 이제 몇번 째 하는 지

' 특공황비 초교' ' 초요' ' 부요황후' ' 녹비 홍수'  ' 취영롱'

 

젊은 시절 무협소설을 못 봐서 나이가 많아 기동력 떨어지면

중국 사극 보고 있으면 세월은 잘 가겠다 싶더니... 벌써그 시기가 온건지

 

땅이 넓고 역사가 오래되니 이나라 저나라 이얘기 저얘기 많기도 하고

내용은 거기서 거긴데 ... 인구가 많으니 나오는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새 인물들이라 지겹지 않은건지

 

SNS에 빠져도 인생낭비라더니... 이제 이렇든 저렇든 뭐 어떻겠어요.ㅎ

마음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사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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