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송찬호 가을

생게사부르 2019. 11. 23. 11:56


 

가을/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그늘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날은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뭐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        *

 

 

이런 시를 쓰는 시인도 대단하지

이런 시를 읽고 그 느낌을 제대로 아는 독자도 이제는 귀할 듯 싶네요.

 

어린 기억에 짖궂은 오빠들이 대나무 숲이니 몰려다니며 전쟁놀이 할 때

고무줄 새총에 콩알로 새를 잡는다고

 

설날 떡국에 유난히 노란 기름이 떠서 물었더니 꿩고기가 들어간 국물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산촌이 아닌 농촌이니 포수가 있을리도 없고 콩알에 약을 묻혀 잡는다 했던가

 

학교 입학하기전 어릴 때 잠시 시골생활이니

일상이 될만큼 체험한 것도 아닙니다. 아슴히 기억에 남은 정도

 

그냥 언어의 감각으로서만이 아니라 저 정경을 실제 체험으로 아는 사람들이 이제

얼마나 남아 있을지... 그럼에도 시간에 바쁘게 쫒기는 도회생활이 대부분일 성인들에게

그리운 정경인 것 만큼은 틀림이 없겠네요.

 

앞으로는 시에서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흘러간다 성미정  (0) 2019.11.28
이원하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0) 2019.11.26
안광숙 감자의 둥지  (0) 2019.11.22
입들 조정인  (0) 2019.11.21
안광숙 멸치똥  (0)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