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입들 조정인

생게사부르 2019. 11. 21. 11:46

 

 

입들/ 조정인



   홍로가 들어갔다. 매장에는 새로 어리둥절한 사과가 진열됐다. 다른 사
과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도 사과가 아닌가. 사과를 한 입 베물었다. 온
몸으로 구강인 사과가 몰려온다. 사과들의 식욕을 누가 다 감당하랴. 일만
ha의 초원과 석양, 일만 톤의 편서풍과 폭설, 일만 톤의 우기와 건기를, 일
만 파운드의 산책자의 뇌를 먹어 치우는 사과. 일만 페이지의 구약에서 신
약을 곧장 먹어치운 사과의 소화기관은 또 얼마나 유구한가. 그 중에 하느
님의 물병이 흘린 새벽이슬을 선호한 사과의 취향을 나는 경배한다. 이슬
속엔 그해, 실과의 단맛을 결정하는 별의 성분이 있다. 사과가 사과인 사
과는 조금 억울하다. 사과라는 천진한 장르에 대해 근엄하게 접근한, 부록
쓰는 일로 그 늙은 학자는 오늘 아침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일생, 사과라는
텅빈 구멍만을 들여다 보다가 신경질적으로 사과를 닫았다. 그러고 보니
축사라는 이름의, 사뭇 점잖은 사과들이 몰려오는 계절이다. 어제는 두개
골만 들고 나온 사과a와 식사자리를 가졌다. 나머지 사과들은 그의 열렸다
닫히는 구강만을 바라보았다. 그의 구취는 너무 쉽게 그의 취향을 들키고
있었다, 그의 난간에 간신히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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