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군가를 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간 재 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이 청년은 보르헤스의 '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 넝쿨처럼 훌쩍 웃자란 청춘
우린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피아노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다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지나가는 중이다
안녕속은 하얗다
난 가만히 있는데
여기저기 정신 없인 늘어나는 재의 흔적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그냥 나가 버렸다
청춘이 아니면 말 없는 짐승처럼 고요하다
고대 앞에서 내릴 때
새파란 보르헤스 청년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 * *
지금 알게 된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 글쎄요?
자신이 청춘에 있을 당시
자신이 가지고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인데
' 젊음은 돈 주고도 못 사지. 암,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누차 들었거든요.
것도 ' 나이듬의 존경' 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약간은 경멸스러웠던 사람에게서 말이에요.
그 사람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아쉬워 하는 ' 청춘'이 썩 좋게 연상되는 건 아니에요.
요즘 같으면 큰일날 일이지만
갓 발령 받은 젊은 여교사들 몸매를 앞뒤로 스캔하면서 외모나 복장을 두고 시비를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물 스타킹 신은 여선생님을 두고 ' 어허 논에서 모내기 하다 왔나' 는 둥
여름이면 여러 사람 앞에서 둥그런 배를 드러내 놓고 선풍기를 쐬고 있기도 했지요
교사로서도 엉망이어서
그 당시는 현직교사에게 과외를 허용하던 시기 였는데
영어과여서 과외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근데 표현을 ' 돼지 친다고...'
1교시나 5교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성적을 조작한 걸 제가 찾아 내기도 했거든요.
그 지역을 떠나오고 난 한 참 후에
여학생들에게 성추행을 해서 타지로 쫒겨 났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런 사람이 아쉬워 하며 입에 달고 다닌 ' 청춘'외에
다른 사람이 일상에서 ' 청춘'을 예찬하던 걸 들은 기억이 없네요.
작가들은 현상이면을 꿰 뚫어 보는 면이 있어요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읽어 내지 못하는 것을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 나지요.
최문자 시인, 생물학적인 나이는 지금 70대임에도 시를 보면 참으로 젊어서
' 청춘' 을 누구보다 오래 누리시는 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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