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청춘/ 최문자

생게사부르 2019. 8. 18. 10:35

 

청춘/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군가를 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간 재 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이 청년은 보르헤스의 '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 넝쿨처럼 훌쩍 웃자란 청춘

우린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피아노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지나가는 중이다

 

안녕속은 하얗

난 가만히 있는데

여기저기 정신 없인 늘어나는 재의 흔적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그냥 나가 버렸다

청춘이 아니면 말 없는 짐승처럼 고요하다

고대 앞에서 내릴 때

새파란 보르헤스 청년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         *          *

 

 

지금 알게 된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 글쎄요?

 

자신이 청춘에 있을 당시

자신이 가지고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누구나 거쳐가는 시기인데

 

' 젊음은 돈 주고도 못 사지. 암,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누차 들었거든요.

것도 ' 나이듬의 존경' 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약간은 경멸스러웠던 사람에게서 말이에요.

 

그 사람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아쉬워 하는 ' 청춘'이 썩 좋게 연상되는 건 아니에요.

 

요즘 같으면 큰일날 일이지만

갓 발령 받은 젊은 여교사들 몸매를 앞뒤로 스캔하면서 외모나 복장을 두고 시비를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물 스타킹 신은 여선생님을 두고 ' 어허 논에서 모내기 하다 왔나' 는 둥

여름이면 여러 사람 앞에서 둥그런 배를 드러내 놓고 선풍기를 쐬고 있기도 했지요

 

교사로서도 엉망이어서

그 당시는 현직교사에게 과외를 허용하던 시기 였는데

영어과여서 과외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근데 표현을 ' 돼지 친다고...'

1교시나 5교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성적을 조작한 걸 제가 찾아 내기도 했거든요.

 

그 지역을 떠나오고 난 한 참 후에

여학생들에게 성추행을 해서 타지로 쫒겨 났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런 사람이 아쉬워 하며 입에 달고 다닌  ' 청춘'외에

다른 사람이 일상에서 ' 청춘'을 예찬하던 걸 들은 기억이 없네요.

 

작가들은 현상이면을 꿰 뚫어 보는 면이 있어요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읽어 내지 못하는 것을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 나지요.

 

최문자 시인, 생물학적인 나이는 지금 70대임에도 시를 보면 참으로 젊어서

' 청춘' 을 누구보다 오래 누리시는 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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