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聽診)
-북아현동/ 이현호
나는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누구보다는 오래 살았고 누구보다는 일찍 죽는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지금부터 그날까지
내 모든 날의 별자리가 떨어져내리는 밤
당신의 이름을 부표로 띄우고, 마음의 수위를 더듬는 밤
오래 돌보지 않은 불행에게도 정이 드는 밤
급한 마중을 하려는 듯 긴 골목을 맨발로 뛰어나가는 바
람 속에서
웃음소리가 높고 맑았던 소현이나 제법 점을 잘 쳤던 장
호 같은
너무 젖어서 떠오르지 않는 얼굴들을 건지다 보면
국제나 굴레방이란 이름의 여관방을 넘어오는 소리가 들
리는 듯
오늘은 기일, 세상의 매일은 누군가의 기일
나의 울음을 나에게 돌려주는 날
가난한 이의 마음은 더 가난하고, 가난보다 더 가난한 마
음들
밤늦도록 깜빡이는 술집을 비틀대며 나오는 단벌의 영혼들
십수 년 만에 어두운 천체를 찢고 가는 떠돌이 별들
밤의 척력에 떠밀려 서로의 등을 마주 보이며 멀어지면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게선 유독 낙엽의 맛이 돈다
언젠가 악수 한 적 있는 시감의 손가락은 그새 많이 야위
었다
생활을 무너뜨린 자리에 생활을 재개발하는 농담이 유행
하는
북아현동, 우리는 이곳에서 여러 잠을 잤다
북쪽에 머리를 두고 자면 안 된다는데, 당신은 잠이 참 많
아서
올해도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오늘부터 그날까지
누구나 가슴을 허물어 내압을 확인해야 하는 날이 있고
이별의 반대쪽에도
언 창문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청진하는 넋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