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현호 배교

생게사부르 2019. 7. 4. 17:46

배교/이현호


  혼자 있는 집을, 왜 나는 빈집이라고 부릅니까

  흰 접시의 외식(外食)도 흠집 난 소반 위의 컵라면도 뱃속
에 들어서는 같은 눈빛입니다

  " 죽기 살기로 살았더니 이만큼 살게 됐어요." ' 혼자 있을
때 켜는 텔레비전은 무엇을 위로합니까 
   이만큼 살아서 죽어버린 것들은

  변기 안쪽이 붉게 물듭니다, 뜨겁던 컵라면의 속내도 벌
겋게 젖었습니다

  겨울은 겨울로 살기 위해 빈집으로 온기를 피해 왔지만,
커튼을 젖히자 날벌레같이 달려드는 햇빛들

  사랑을 믿기 때문에 사랑했을까, 삶을 사랑해서 살아가
고 있을까

  밥을 안치려고
손등은 쌀뜨물 안에서 뿌옇게 흐려진다

네가 없는 집을 , 나는 왜 빈집이라고 불렀을까

 

 

 

*       *       *

 

 

배교란 믿음을 포기한다, 등진다, 버린다 같은 의미로 통상 쓰이지만

헬라어의  Apostasy는 위치를 떠난다, 유기, 포기의 의미를 포함하네요

 

박준 시인과 마찬가지로 1983년 생입니다.

' 아름다웠던 사람은 혼자' 라는 시집으로 제 2회 '시인동네' 문학상을 수상했구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 온 세대들

특히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 온 젊은 세대들의 서정시입니다.

 

이전 세대의 자연과 시골에 대한 향수를 체험한 세대가 아닙니다

 

그 이전 세대의 시인 중에서도 도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 중에는 이를테면 김혜순이나 김행숙

같은 시인들의 시에서도 애초 자연은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는 체화된 정서의 산물인데 몸에 착 달라붙지 않은 간접체험만으로는 몸 시가 되기 어렵겠지요

 

저만해도 학교 입학하기 전 시골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기에 그나마 그 정서를 이해하고 

쬐끔 공감한다지만 제가 쓰는 시에 그런 소재로 발화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만약 쓴다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거나 흉내내기에 불과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젊은 두 시인의 시에 공감이 가능함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자연이나 사물 대상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심리를 깊게 파고 들고 통찰하고 하는 게

시골 떠나 온 이후 제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몸 담은 사회문화 교육적 배경은 이 시인들에 비하면 부모 세대에 해당해서

온전히 공감한다 할 수 없지만 세대를 건너 뛰어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이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우주 자연과의 교감이 인간 삶의 한 중요한 방식이라고 보면 일면 불행일 수도 있는

시인 세대, 가정-학교- 학원

걷기보다 시멘트 포장된 도시에서 차를 더 많이 탔을

주택보다 아파트 숲에서, 건물 사이에서 해가 뜨고 지는 걸 봐 왔을 세대의 서정

 

박준 시인은' 어쨌든지 비 효율적인 쓸모 없는 일을 골라 했다'고 하고

이 현호 시인 역시 그 빡빡한 경쟁과 생산적 효율이 강제되는 속에서

' 낭만'을 잃지 않은, 나름의 서정을 간직하고 시로 표현할 수 있었으니 

 

달라진 세대의 서정시가 어떻게 쓰이고 읽히는지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준다고 할까요

젊은 두 시인의 건필을 바랍니다.

 

저도 좋은 시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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