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점령운동과 세계금융위기
출처: http://ajdajfjd2.egloos.com/1139780
세계금융위기 발발 이후 세계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일반 대중의 항거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확산되었다.
2011년 9월 뉴욕에서 시작된 된 ‘월가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과 이후 많은 나라와 도시들에서 일어난 ‘점령운동’들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판이었다. 물론 월가점령운동 이전에도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세계금융위기의 피해에 항거하며 기존의 질서에
반대하는 다양한 저항운동들이 일어났고, 월가점령운동은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99%다”라는 이들의 구호가 보여주듯, 세계금융에 대한 반대운동은 극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된 부와 특혜에 대한 항거였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점령운동이 “우리의 금융시스템이 작동하는데 대한 광범위한 좌절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세계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항거는 폴라니(Polanyi)가 제시한 ‘이중운동’(double movement) 개념으로 포착될 수 있다.
폴라니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두 개의 힘으로 형성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장의 자기확대운동’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다.
시장의 자기확대운동은 시장기제가 사회의 비시장적 질서를 파괴하고 대체하며 시장경제의 영역을 확대해 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은 이러한 시장질서의 확대로부터 비시장적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폴라니는 이 두 운동 사이의 역학관계와 상호작용에 따라 현대사회의 모습과 지속가능성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는 시장의 자기확대운동이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을 압도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초래된 시장의 사회로부터의 탈구(disembeddedness)가 사회의 반운동(countermovement)을 불러옴으로써
19세기적 질서가 붕괴했다고 설명했다.
러기는 폴라니의 이러한 시각을 연장하여 2차 대전 이후에 설립된 국제정치경제질서의 성격을
“배태된 자유주의 타협”(embedded liberalism compromise)으로 규정했다. 각국의 민주정치와 공존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유시장을 허용하는 제한된 시장질서가 수립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의 핵심에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세계금융이 부활하고 전후의 타협은 붕괴되었다.
또 다시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에 대한 믿음이 살아났다.
폴라니와 러기의 시각에서 보면, 오늘날 통제받지 않는 세계금융시장이 위기를 맞게 되고 사회가 세계금융을 비판하며
금융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금융이 미치는 사회파괴적 효과 때문이다.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금융세계화에 따르는 빈번한 금융위기가 금융부분을 넘어 사회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세계금융시장이 자기조정적 시장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기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다.
그리고 금융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증가할수록 금융위기의 발발 가능성도 증가한다.
로고프와 라인하르트는 수세기에 걸친 국가채무위기 및 금융위기의 사례들을 조사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들은 특히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은행위기의 발생 빈도 사이에 있는 놀랄만한 상관관계”에 주목하며,
금융세계화가 금융위기를 더욱 빈번히 그리고 대규모로 발생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금융위기, 특히 대규모의
금융위기는 그 파급효과가 단순히 금융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위기가 최초로 발생한 국가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이번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의 월가에서 발생했지만,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세계적 경기침체를 가져와서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개인들이 소유한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의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들의 부도와 불경기로 실업이 증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빠지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관계없이 직장에서 내쫒기고 재산을 잃는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둘째,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을 구제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 부담도 대부분 납세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정부는 재정자금으로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고 중앙은행은 저리의 자금을 제공해서 금융기관들을 지원한다.
미국의 경우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도입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재무성 및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하여 2011년까지 총 4.6조 달러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고,
16.9조 달러의 연방정부 채무보증이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연준은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을 통하여 막대한 자금을 금융시장에 제공하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융위기에 노출된 나라들의 경우 매우 유사하다. IMF의 보고서에 따라면,
세계금융위기 발발 이후 2009년 5월까지 주요 20개국(G20)의 정부들이 재정지출을 통하여 제공한 구제금융 금액이
평균적으로 GDP의 3.7%였고, 여기에 중앙정부와 중앙은행이 지불보증한 금액까지 합치면 그 비중이 평균 32.5%에 달했다.
스티그리츠는 이러한 상황을 매우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의 시스템에서는 은행가들은 구제받고 이들의 제물이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보도록 내버려진다. 더욱 나쁜 것은, 은행가들은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와 대다수의 근로자들이 평생 벌어 보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는 반면에, 열심히 공부하고 룰을 따른 젊은이들은 취업을 할 희망조차 갖기 어렵다
셋째, 금융세계화 자체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위의 두 가지 이유가 금융위기와 직접 관련된 것이라면,
이것은 금융세계화의 근본적인 효과에 관한 것이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오래된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화는 자본과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금융세계화는 세계화의 한 부분이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소득불평등 심화에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노동에 대한 자본의 협상력을 증대시켜 자본의 수익률을 높인다. 그리고 금융자유화에 따른 다양한 금융기법을 통하여
세계적 수준에서 수익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세계금융시장의 작동에 따른 정부와 노동의 규율효과도 자본의 이익에 기여한다.
물론 금융세계화와 소득불평등의 상관관계의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미국이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그 강도가 높다.
미국의 소득분배 자료에 따르면, 1979년 이후 금융위기 이전까지 평균소득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소득 상층부의 소득증가 속도가 하층부보다 빠르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소득이 감소하는 시기에는
상층부의 감소속도가 하층부보다 낮음으로써 소득불균형이 심화되었다.
특히 최상위 1% 가구가 전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9년 9.6%에서 2007년에는 20%로 증가했는데,
이 기간 중 이들의 자본소득이 전체 자본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4%에서 65%로 증가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소득증대의 50% 이상이 최상위 1%의 몫이었다.
미국에서 이처럼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는 금융부문과 비금융부문 사이의 힘의 균형이 금융부문에 유리하게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정진영, 세계금융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한 재고찰:금융과 정치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동아시아 국제정치학회, 2013),
210~2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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