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문인수 2월

생게사부르 2019. 2. 21. 13:21

2월/ 문인수


그대 생각의 푸른 도화연필 같은 저녁이여,
시린 바람의 억새 사이사이가
자디잘게 자디잘게 풀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억새와 바위 사이가 또한
거뭇거뭇
소문처럼 번져 잘 풀리면서
산에 있는 것들 모두
저 뭇산의 윤곽 속으로 흘러 들었나,
불쑥불쑥 지금 가장 확실히 일어서는
검은 산 아래
저 들판 두루 사소한 것들의 제방
안쪽도 차츰 호수 같다
다른 기억은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이여
세상은 이제 어디라 할 것 없이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고
그립다, 그립다, 눈머는구나
저렇듯 격의 없이 끌어다 덮는 저녁이여
산과 산 사이, 산과 마을 들판 사이
아, 천지간
말이 없었다 그대여
마음이 풀리니 다만 몸이 섞일 뿐인
저녁이여


- 시집 '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

 

2월/ 오세영

 

 

' 벌써' 라는 말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가지를 살펴 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 듯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내 밝힌다

외출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 벌써' 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       *       * 

 

 

겨울과 봄이 공존하면서

제 스스로 계절의 경계가 되는

2월

 

양력 새해를 맞았고

음력으로 구정을 쇴으며

보름을 맞이하는

' 벌써' 2월,

 

 ' 홀로 걷는 달'

' 삼나무에 꽃바람 불고,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 

' 움이트고 햇빛에 서리 반짝이는 달'

 

제 스스로 2-3일은 잘라먹고 있는 달

2월도 ' 벌써' 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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