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영광 문병, 쉼,

생게사부르 2018. 10. 14. 08:14

문병 / 이영광


 

사라지지 않는 고통 같은 건 없다고 그녀는 그에게 말
한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가
그를 끄덕인다 그가 이를 악물고 일어나려 할 때 그를 물
고 있는 고통은 말이 없다 고통이 말없이 아플 때 고통의
배후에는 고통을 물고 놓아 주지 않는 강철 이빨이 있다
물고 뜯고 사생결단하는 침상 한가운데로 사십 킬로 남짓한
그의 몸이 밥으로 던져져 있다 고통은 온종일 밥을 먹는
다 배가 터지면 밥 속으로 들어가 잠깐 쉬고 나와 밥
을 물어뜯는다 그래도 고개는 그를 끄덕인다 그녀가 그를
다시 눕힌다 그래, 사라지지 않는 고통 같은 건 없고 말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라지는 것고 없고말고 밥을 다 먹
어치우자마자 고통은 밥 속에서 죽을 것이다 고개는 기어
코 그를 꺾을 것이다 그래 그래, 사생결단이 끝나면 고통
을 깡그리 먹어치운 강철 이빨이, 통통하게 살찐 죽음의
웃지 않는 웃음이 나타나고말고 고개 꺾일 때 내게로도
옮겨오고말고

 

 

 

쉼,

 

 

식은 몸을 말끔히 닦아놓으니,

생의 어느 祝日보다도 더

깨끗하고

희다

미동도 없는데 어지러운

집은, 우물 같은 고요의 소용돌이 속으로

아득히

가라 앉는다

찰싹, 물소리가 들려온 듯한

창밖 새소리가 홀연 먼 산으로 옮겨 앉는

이 순간을,

한 번만 입을 달싹여

쉼,

이라 불러야 할까

우물 속에는 밤새워 가야 할 먼 길이

저렇듯 반짝이며 흐르고 있으니

 

 

*        *        *

 

사라지지 않는 고통 같은 건 없고 말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고 말고

.

.

식은 몸을 말끔히 닦아놓으니,

생의 어느 祝日보다도 더

깨끗하고

희다

 

 

젊은 날 영혼과 몸이 자유로운 만큼 가족이나 친척일에 소홀하여 집안 모임에도 나오기 어려웠던

사촌오빠의 부고를 듣습니다

 

이미 병마에 시달린다 소리 듣고 있었습니다만 워낙 소식 끊고 살아와서 찾아뵙지 못했네요.

수도권 병원이기도 했고, 환자 본인이 원하지 않으신다 하셔서요.

지난 여름 형제들 휴가 때 위문금을 모아 보내드리는 걸로 마음의 부담을 나누고 말았습니다만

결국 이제 살아 있는 모습은 뵐수 없겠네요.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든 살아생전 얼굴 한번 보는 게 낫다 생각했는데 몇년 전 부터 그 생각도 좀 바뀐것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병마에 지친 분들 뵙고 오면 며칠동안 가슴 먹먹하고 우울하고 마음 아픈 것도 그렇지만

돌아가시고 나서도 건강했던 기억보다 병마에 지쳐 피골이 상접한 그 마지막 모습만 기억에 남아

마음이 안 좋더라구요.

 

이런 이기적인 마음도 살아가는 한 방편으로 생각되어 부끄럽지만 현실은 그러네요

젊어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마음은 힘들어도 몸은 견뎌내 주는데 요즘은 좀 우울하고 힘들면 

몸과 맘이 함께 내성이 떨어져 고생을 하게되니

나이 든 사람의 변명이기도 하고, 합리화기도 하고 그렇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한 이영광 시인은 통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에서 처럼 ' 식은 몸 깨끗이 닦아 놓으니 생의 어느 축일보다 더 깨끗하고 희기를'

 

내일 세례 받았던 칠암성당을 거쳐 반성 가족묘에 안장할텐데요

정말 피붙이 하나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시네요

다른 친척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삶의 내용이 어떠했든지 간에... ' 찬란한 삶' 이었습니다.

피곤 했던 몸과 맘 다 내려 놓으시고 영면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