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세랑 뒤에서 오는 여름

생게사부르 2018. 10. 7. 07:11

박세랑 뒤에서 오는 여름

 

 

 

 

 

박세랑


뒤에서 오는 여름


여러 방향으로 꺾이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흔들리는 풍경이 다가오는데
여름 안에서 나 혼자 걷고 있었다 여름이 무성하게 이파리를 뿜어 내고 그늘을 만든다 삐뚤
빼뚤 자라난 내가 징그럽게 언덕을 뒤덮고

생각을 길게 이어서 하면

펼쳐놓은 들판이 넘어간다 웃음과 비명으로 풀들이 찢겨 있었다 이파리는 떨면서 바닥에 엎
드려 있고, 문장들이 따라붙는 건 모르는 사람들의 불행들이지 남의 고통은 문장에게 최고로
인기가 많고

글씨들은 다정한데
감당할 수 없어서 조금 미쳐 있었고

살기 위해 나무는

줄곳 상처를 입고 있었다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전부 징그러웠다 겹겹의
렌즈들로 징그러운 내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무서울 게 없었다 두려움을 지나칠 수 있는 슬
픔이 더 커져버려서

뭉개진 새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더는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래 버려졌던 거니 서늘
하게 등뒤가 젖어 있던 날

지나오던 길목에서 죽은 새 한마리를 본다

익숙한 문장은 겪어본 일들이었다

 

 

*       *        *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얼마나 곁에 있어 줄지 의심스럽지만

시인의 여름을 되돌아 보게 하는 시

 

올해 ' 문학동네 신인상' 작품입니다

물론 대상작은 ' 뾰족한 지붕들이 눈을 찌르고 귀마개를 뺏더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고' 라는 긴 제목입니다만

 

' 문장들이 따라붙는 건 모르는 사람들의 불행'들이고 ' 남의 고통은 문장에게 최고로 인기'가 많답니다

타인의 불행에서 건지는 문장이 시인에게 행운이 되고 감당할 수 없어서 조금 미쳐 있는

슬픈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네요.  

 

진해 출신으로 고등학교까지 지역에서 생활하고 오로지 글쓰는 재능으로 서울로 진학했네요.

소설 수상작 역시 거제출신(김지연)이라 경남에 경사가 났습니다.

 

좁은 땅 덩어리에서 굳이 지역을 거론하고 싶지 않고 사실 수상자 두분 다 성인 이후 수도권에서 생활하고 있어 

서울사람(?)이나 다름 없습니다만, 제가 주목하는 건 고등학교 시절까지 지역에서 생활했다는 점입니다.

문학의 토양이 되어 줄 성장기 기반이 지방이었다는 거 중요한 자산일수 있으니까요

 

말은 나면 '제주'로 사람은 ' 서울' 로 가야 한다는 말의 생성부터가 지방을 ' 변방'으로 치부하는 말입니다만

학교 근무할 때 부터 지방학생들이 대학 진학에서 만큼은 서울학생들에 비해 늘 불리한 입장이라는 거

좀 불만이었습니다.

살고 있는 지역 프리미엄이야 당연하거지만 입시제도 자체가 분명 정규적인 학교생활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이지요

 

극히 우수한 소수 학생 빼면 상위권 대학 진입은 참 어려웠습니다.

지방에서는 잘 한다고 소문난 학생들도 한양대, 경희대, 외대( 이 학교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진학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 자체가 힘들어져서 ' in seoul ' 이라는 용어 까지 등장하게 되었는데

서울서 학교 다닌 아이들은 지방학생들에 비해 다수의 학생이 쉽게 진학을 했다는 것이지요.

 

일단 서울 진입하고 나면 영어 같이 ' 과외'나' 학원수업' 으로 훈련되지 않은 자연스런 학습은

지방 학생들이 결코 뒤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서울이 체험할 수 있는 반경이 넓고 자극도 많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풍토상 학창시절 ' 학원'이나 ' 고액과외' 같은 부정적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서

연예인 같은 직업은 서울이 유리 할지 몰라도 문학의 자양분은 도회적인 생활이 대부분인 이 시대

적당한 중소도시 생활이 차별성이 있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제 눈에는 젊다 못해 어린데 글 쓴 이력은 짧지 않아 보입니다

시를 읽어보면 젊은 티가 팍팍나고 아들 나이 뻘인데 한 인생을 시인으로 살겠다고 점을 콱 찍네요

 

소개된 사진 외양부터 다소 수수한 모습을 구가하던 기존 여성시인과 다르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 젤리몬즈 세랑쌤의 구연동화' 활동이나 그라폴리오 ‘박자몽’으로 그림과 동화를 함께

      아이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세대차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요

 

 '치열하게 아프고, 천진하게 탄력이 있는 독특한 매력'(박상수 시인)이라거나

'옥타브가 높은 언어들과 주관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원 시인) 이 심사평이고

 

' 내가 가진 상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그대로 펼쳐내려고 노력하며, 지지 않겠다는 의지'

' 자신의 시가 한국 여성들의 상처를 대변하는 단단한 목소리가 되면 좋겠다' 는 수상소감입니다

 

신선하고 참신한 여성시인의 등단을 축하하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 보여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