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허수경 기차는 간다, 섬이되어 보내는 편지

생게사부르 2018. 10. 5. 00:57

섬이되어 보내는 편지/ 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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