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자주 틀리는 맞춤법 한영희

생게사부르 2018. 9. 11. 18:45

자주 틀리는 맞춤법


한영희



일기 속에 오늘을 틀리게 써넣었다. 언니는 자주 모서리에 부딪친다 나는 현명
하다 골목은 흔한 배경이다 옆집 개는 죽는다 똥개야 살지 마 언니야 던지지 마
휘갈겨 쓴 문장들을 언니는 몰래 훔쳐 읽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낮은 계단에게
나, 새는 물컵에게나, 쭈그려 앉은 개에게나, 길 한복판에서 내게. 너는 왜 늘 네
멋대로니?

곧 바뀔거라고 믿은 빨강은 멈췄다. 행인들이 그냥 건너가 버렸다. 언니가 틀렸
다. 나는 운이 많은 아이니까. 셋만 세면 언니가 다시 돌아올 거니까. 나는 숫자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사거리에서 언니가 뒤돌아봤다. 내가 알고 있던 언니는 없
었다. 언니야 괘찬지마 언니야 도라오지 마 어떡게 어떻해 멈추지 마

건너편 간판엔 각종 찌개 팜니다 어름있습니다 나으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옳바
른 행동교정 이상한 글자들이 좋았다. 내 이야기가 비뚤어질수록 좋았다. 아무도
날 교정하지 못하는 게 좋았다. 정답과 멀어진 내가 좋았다. 틀린 간판은 어디에든
걸려 있고. 언제든 글자를 거꾸로 읽을 수 있으니까. 사라진 언니를 떠 올리는 대신
오늘의 날씨를 읽었다.

맞춤법은 틀렸어, 기상예보는 틀렸어, 앨리스가 틀렸어, 대통령은 모르지, 언니
가 옳았지, 백과사전이 옳았지, 철학자마저 옳았지, 그러니 내가 틀렸어, 뭐가 틀
렸는지 몰랐고 아무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옳았어, 틀렸으니까 모르고 모르니까 웃
기고, 불가능하게 구름이 툭 떨어져버리고, 꽉 막힌 도로에 싱크홀이 생겼다. 이제
나는 영영 틀린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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