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영배 물과 할머니

생게사부르 2018. 7. 26. 08:37

신영배


물과 할머니


문장 속으로 몸을 집어넣는 할머니는
자꾸 단어를 까먹어서
문장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목이 타는 날은
집 안에 있는 모든 물을 틀어 놓았다
몸이 물에 불어서 문장은 넘쳤다
끓여도 끓여도 익지 않는 문장을
찔러보고 찔러보고
붉은 색에서 검은 색으로 몸이 변할 때
사이렌이 울리자 할머니도 울었다
보자기에 물을 싸도 싸도
새기만 하는 사정
문장은 힘이 빠졌다
집구석을 빠져나갔다
비가 할머니의 옷을 벗겼다
벗겨지는 문장이 할머니는 좋았다
욕을 퍼부어도 꽃들이 웃었다
소녀들이 까르르 물결을 일으켰다
할머니는 물결을 뒤집어 썼다
가슴에서 주름이 반짝였다
여자들이 굽이치며 웃었다
할머니도 굽이쳤다
골반과 닭다리가 휘어졌다
강을 따라가는 문장도 좋았다
돌아오는 길도 있었다
해진 두 발은
맨 나중에 문장 속으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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