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허영숙 꽃싸움

생게사부르 2018. 2. 16. 17:02

싸움 / 허영숙 


 

느티나무 그늘을 펴놓고
할머니 여럿 둘러앉아 꽃싸움을 한다
선이 된 사람이 꽃잎 몇장을 깐다
손 끝에서 매화가 피고 모란이 피고
국화가 피고
새가 울고 달이 뜨니 창포도 한꽃대
밀어올린다
거듭 나는 열 두달
주름의 행간으로 스민 생의 사계가
저 곳에 있다
꽃등만 보고도 꽃말을 맞추는 나이
패를 들켜도 두려울 것이 없다
빛날 광에 목숨 걸지 않아
단풍 든 시절이 한참 지난 저 싸움엔
패자도 없다
꽃 필 때마다 웃음도 그늘로 거느리고 있는
느티나무 심판관
꽃값을 대신 읽어 줘서 하늘하늘 즐겁다
꽃잎끼리 부딪칠 때마다
씨방에서 터지는 꽃 웃음
다시 꽃을 볼 수 있을 까
조심스레 마지막 꽃잎을 꺼내는 손 끝에
바람도 긴장한다
꺼내 놓을 패가 없어 뒤집을 것도 없지만
눈 부시게 피던 시절을 지금은 저 손 끝에
거느리고 있어
봄날은 아니더라도 화투의 시절엔
꽃 지는 법이 없다

 

 

 

*       *       *

 

 

 

할머니들이 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오락, 십대부터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거치고

비로소 책임과 의무에서 놓여나 시간 여유를 가지면서 점 백이니 동년배 친구들 끼리의 소일꺼리 꽃싸움...

도 머리를 굴려야하니 치매예방이 된다느니

 

이전에는 명절 날 모처럼 만난 친인척들 간 오락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런 시간도 보내기 어려울 듯요.

장거리 오랜시간 오고 가느라 차를 타고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화투나 카드 같은 오락은 해 보지 않아서 할머니가 돼도 개인적으로 꽃싸움은 해 볼수 없겠네요.

요즘은 등 너머 구경할 기회도 거의 없습디다만...

 

 

 

 

 

 

 

영국 여성 작가로 이미 100년도 더 이전에 한국에 와서 우리의 풍속화를 그렸던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입니다.' 정월 초하루 나들이'  우리 설을 보내는 모습인데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의상으로 재현된 걸 봤습니다.

 

벽안의 여성화가에게 동양적인 문화 풍습들이 얼마나 새롭고 신기했을까요.

그러나 이젠 서구화된 의식주생활이라 이전의 서양작가 그림에서 우리의 전통 모습을

찾아야하니 좀 아이러니합니다.

 

 

 

 

 

신부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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