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영
월도(月刀)
- 대성동 23호 출토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달이 발굴되었다
시간이 고스란히 붉은 녹으로 쌓인 초승달
포개진 두 입술 중에 하나를 베어낸 듯
날카로운 비명이 녹안에 감춰져 있었다
비명은 칼의 전부가 되어 유리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무언가를 토막 낼 듯이 저벅저벅 돌아다녔다
너무 오래 혼자 있었다고
뼛가루 날리는 공기 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날을 세운 것들을 두려워한다
눈빛만으로도 누군가의 목을 차갑게 베어내는
전시장에서 우연히 본 칼이
집까지 뒤따라와 내 등을 툭, 친다
그게 기억이다
어느 날 문득 한밤중에 깨어나
내 입술을 닮은 칼이 도마위에서 빛나는 걸 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가
부욱 찢어진 달을 업은 채 나무 도마 위에서 서성
이는
칼, 칼이 자라고 있다
2006. 여름계간 시인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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