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임솔아 하얀

생게사부르 2017. 10. 20. 14:29



하얀/ 임솔아  


 

불을 끄니
불을 켜고 있을 때의 내 생각을 누군가
훤히 읽기 시작한다.

낮에 만난 이야기들은 햇빛에 닿아
타버렸다

베란다의 토끼는
귀가 커다랬고 털이 하앴고 나날이
뚱뚱해졌다

내가 없는 한 낮에
벽지를 뜯고 책상을 갉고 내 운동화를 핥다가 어느 날
죽어버렸다

나는 입술을 뜯어 먹다가 내 입술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빨아 먹었는데 왜 그랬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살인자는
대답한다.
나는 다른 죽음을 향해
채널을 바꾼다.

불꺼진 방에
나는 앉아 있다. 아픈사람처럼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토끼를 씻어주었던 날 토끼는 죽었다.
나는 두 손으로 누군가의 까만 그림자를 씻어준다.
기억나지 않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한다고
살인자가 대답한다.

불을 켜니
불을 끄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하던 생각을 나는
이어서 하게 되고

우리 건물이
흰 안개에 싸여 있단 걸 나가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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