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최영미 가을에는, 혼자라는 건

생게사부르 2017. 10. 13. 01:22

가을에는/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 놓은, 뭉게 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 온다
뭉게뭉게 피어난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혼자라는 건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 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          *          *

 

 

     최영미 시인만 해도 우리세대라 이렇게 ' 혼밥' 족의 비애를 서글프게 노래하지만

 

이즈음의 젊은이들에게 혼밥, 혼술, 혼행은 특별한 서글픔이 아니어야만 하지 않을까?

혼자 일 때도 있고 둘이나 여럿 어울릴 때도 있고 자의든 타의든 사회문화 측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혼밥이라?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 밥을 해결하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화장실이나 빈 강의실 등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면서 2014년에 등장한 말이다.

 

인간은 ' 사회적 동물'이라 함께 어울려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전제를 깔고

'한 솥밥'을 먹는 가족, 식구에서부터, 학창시절 친구, 직장동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이라는 생각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왠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서마저 함께 할 친구, 동료가 없어 보이는

' 왕따'로 보는 시선,

어떻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 따돌리는 듯한, 사회성에서 문제가 있게는 인식

 

 '혼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적지 않아서 '변소밥(화장실에서 혼자 먹는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고일부 대학가에는 '밥터디, '밥+스터디(그룹)'도 등장했다고 한다.

식사 때만 모여 함께 식사하고 헤어지는 모임이다.

 

내가 아는 분 중에 남편 분이 먼저 퇴직을 하셨는데 어디 식당가서 밥 한 그릇 사 먹으려해도

청승스러워 혼자 못 가겠어서 아직 퇴직 나이가 아닌 사모님을 명퇴하시도록 했다는 얘기

 

우리 세대에 남자 분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일부고,

냉장고에서 꺼내 차리기만 하면되는데도

혹은 식탁에 려놓은 음식도 혼자 앉아 먹기 귀찮거나 청승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개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젊은이들이 남여 불문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노인층에서도 일인 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에 혼밥 족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혼밥 스트레스는 전통사회의 대 가족 제도의 부산물로 '식사는 여럿이 해야 한다'는 우리의 문화적인 전통과,

식재료 보관이 어려워 여럿이 함께 밥을 먹었던 과거 습관이 뿌리 깊게 남아  혼자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도 해석하는데(곽금주)

젊은 층에서는 '자발적인 혼밥족'이 늘어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더치 페이'가 당연한 서구적 문화에 '정' 이 넘쳐나는 한국적인 정서가 어중간하게 결합된 형태에서

기분상으로는 다수의 식사비를 기분좋게 내고 싶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은 비용에 신경 쓰여 주저하게 되고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 탓에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

이들은 혼밥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밥을 혼자 먹으면 식사 약속을 잡거나 식당을 찾는 데 허비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더 나아가면 아예 혼밥을 즐거운 유희로 적극적인 재미로 만들려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는 모양.

자신의 생활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혼밥을 '인증 놀이'와 결합해 '혼밥 인증'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

인터넷 커뮤니티에 화장실과 벤치 등에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한다

혼밥과 먹방(먹는 방송)의 결합이라 해야하나?

 

어떻든 시대 흐름 따라 혼밥, 혼술족을 겨냥하는 상업 트렌드도 생겨나서 이들을 겨냥한 음식점이나

레스토랑들이 생겨 메뉴와 자리 배치에 신경을 쓰는 음식점도 부쩍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혼자 식사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로 말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젊은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필요하면 남의 시선 개의치 않고 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 편이다.

 

   

    ' 설흔, 잔치는 끝났다'의 첫 시집에 실린 시인데 ' 외로움'이 철철 넘쳐흐른 채 삼십년이 흘러왔다.

    

     여류작가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삶을 예상하고 문학에 대단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던 여고 동창이 있었다

     그럼에도 운명은, 그 친구 역시 미혼인 채 방송작가, 큐레이터로 사는 삶으로 데려갔다.

 

 

 

 

사진장소 : 멕시코 유카탄 반도 깐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