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생게사부르 2017. 8. 19. 08:35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푸른숲

 

 

*      *      *

 

 

인간에게는 평생 사용할 총 에너지가 있다더니

속된 말로 ' 굵고 짧게' 살 것인가 ' 가늘게 길게' 살 것인가

인명재천이라 선택을 해서 의도하고 산 것은 아니겠으나

온 에너지를 다하여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

하여 ' 요절'인데

 

윤동주나 이상처럼 20대에 요절한 시인도 있고

 

이제 한창 성숙해 인생의 이치를 알 만한 40대에 애석하게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고정희시인(1948-1991. 43세) 역시 젊은 시절 운동권에 몸 담았다가

40대 돌아가신분이고 김남주시인(1946-1994. 48세)도 그렇다

음악이나 예술하던 분들은 자신의 삶을 예술로 남기고

예술인이 아니라도 조영래변호사(1947-1990. 43세), 이태석신부(1962-2010. 48세)

역시 '더불어 함께 사는 일에 열성'을 다 하시다 40대에 돌아가신 분들이다.

 

돌아 가셨어도 남은 사람들 가슴에 ' 쿵'하고 양심이 깨어 있도록 망치로 심장을 때리는

역할을 하시는 분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라고 자주 일깨우시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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