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생게사부르 2017. 8. 14. 00:54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 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 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 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 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 불쑥 다가 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 지리산의 봄" 1987. 문학과 지성사



고정희 (1948-1991. 43세)
1975. '현대시학' 등단  1983. ' 이 시대의 아벨'
시집: 누가 홀로 숲들을 밝히고 있는가(1979) 
        상한 영혼을 위하여
        연가, 부활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