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진
맨드라미
낮은 토담 아래로 마을의 그늘은
압지 속으로 빨려드는 물처럼 흔적없이 사라진다
마당은 샛노랗게 정지되어 있다
토담 아랫쪽, 목마르게
열려 있는 마당 가장자리로
검정 개 한 마리 재빠르게 스며든다
하늘 속으로 토담 아래 그늘을 빨아들이며
푸른 잎이 돋는다
돋는 푸른 잎 위에
막, 잘라 얹어 놓은 개 대가리
붉은 그늘 번득이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꽃 피는 손
늙은 손
마른 나무 가지 아녀자들의 손
양은 물통 들고 저 산 꼭대기 낡은 집으로 들어가네
민무늬 납도리 기둥 안쪽 비나이다 비나이다
꽃 피는 손 늙은 손
손가락 가락 가락을 허공 중에 피어올리며 맑은 샘을
퍼올리네
마을을 빠져 달아나던 아이 하나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 허허벌판 눈 밭에 꽃이 피네
꽃 피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하 녹두꽃, 오적 중 장성편 (0) | 2017.08.15 |
---|---|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0) | 2017.08.14 |
최문자 튜닝 (0) | 2017.08.12 |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0) | 2017.08.10 |
이정환 헌사 (0) | 2017.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