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최승호 거울, 담쟁이 덩굴

생게사부르 2017. 7. 18. 01:00

최승호


거울


거울을 볼 때 마다
점점 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요귀妖鬼지 사람이랴

거울공장 노동자들은
늘 남의 거울을 만들어놓고
거울 뒤편에서 주물鑄物처럼 늙는다

구리 거울을 만들던 어느 먼 시절의 남자를
훤히 비추던 보름달이
곰팡이도
녹도
이끼도 없이
빌딩 모서리 스모그 위로 솟고 있을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껄껄껄 웃을 만큼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


담쟁이덩굴


허공이
높은 담이었다면
담쟁이덩굴들은 더듬더듬 기어올라가다가
허공을 훌쩍 넘어 갔을 것이다

 

허공 너머에

또 무슨 알수 없는 담이 겹겹이 치솟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넘어가고 넘어간 뒤에도 무수한 덩굴손들은

끝없이 뻗어 나가고 힘차게 뻗어나가지 않았을 까

 

참으로 질긴 담쟁이 덩굴이라면

담쟁이덩굴의 근성으로

허공이 바다 밑으로 주저 앉는다 해도 기어오르고

줄기가 토막 다 해도 거대한 낙지발처럼 꿈틀꿈틀 뻗어 나갔을 것이다

 

 

     최승호:1954. 춘천

           1977. 현대시학 데뷔

           시집: 1983. ' 대설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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