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준 꾀병, 오늘의 식단

생게사부르 2017. 7. 16. 00:44

박 준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

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

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

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

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오늘의 식단
          -영(暎)에게

 

나는 오늘 너를
화구에 밀어넣고

벽제의 긴
언덕을 내려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는 친구에게

답 대신 근처 식당가로
차를 돌린 나는 오늘 알았다

기억은 간판들처럼
나를 멀리 데려가는 것이었고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너는 오늘
내가 밀어넣었던

양평해장국 빛이라서
아니면 우리가 시켜 먹던
할머니보쌈이나 유천칡냉면 같은 색이라서

그걸 색(色)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에

네 짧은 이름처럼
누워 울고 싶은 오늘

달게 자고
일어난 아침
너에게 받은 생일상을 생각하다

이건 미역국이고 이건 건새우볶음
이건 참치계란부침이야

오늘 이 쌀밥은
뼈처럼 희고
김치는 중국산이라

망자의 모발을 마당에 심고
이듬해 봄을 기다린다는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을 생각하는 오늘

바람은
바람이어서
조금 애매한

바람이
바람이 될 때까지
불어서 추운

새들이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

나는 오늘

 

[출처] 오늘의 식단 / 박준|작성자 book thief

 

 

*      *      *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느냐

 

가차왔던 누군가를 화구에 넣고

또는 사랑하던 이를 땅 속에 묻고도

때가되면 뱃속이 염치없이 꼬로록거리며

기별을 한다는 게...삶이다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다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

 

     울음도 한마당 잘 놀고 나면

     치유가 되기도 해서

 

산사람은 어찌해도 또 살아가기 마련이다

자기차례가 올 때까지는...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호 거울, 담쟁이 덩굴  (0) 2017.07.18
원무현 홍어  (0) 2017.07.17
신미나 싱고, 아무데도 가지 않는 기차  (0) 2017.07.15
송승언 물의 감정  (0) 2017.07.13
박지웅 소리의 정면  (0) 2017.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