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나
싱고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 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 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눈 감으면 흰빛
살 무르고 눈물 모르던 때
눈 감고도 당신 얼굴을 외운 적 있었지만
한번 묶은 정이야 매듭 없을 줄 알았지만
시든 꽃밭에 나비가 풀려나는 것을 보니
내 정이 식는 길이 저러할 줄 알아요
그래도 마음 안팎에 당신 생각을 못 이기면
내 혼은 지읒 시옷 홑겹으로 날아가서
한밤중 당신 홀로 잠 깰 적에
꿈결엔 듯 눈 비비면 기척도 없이
베갯머리에 살비듬 하얗게 묻어나면
내가 다녀간 줄로 알아요, 그리 알아요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기차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이 차다고 말했을 적에
연밥 위에
무밭 위에
아욱 잎 위에
서리가 반짝였지
고양이 귀를
살짝 잡았다가 놓듯이
서리, 라는 말이
천천히 녹도록 내버려뒀을 뿐인데
꼭 당신이 올 것처럼
마을회관을 지나
비닐하우스를 지나
버스정류장을 걸어가네
덜 말라서 엉킨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걸어가네
—시집『싱고, 라고 불렀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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