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그리운 쇠스랑, 공광규 소주병

생게사부르 2017. 7. 1. 07:57

 

그리운 쇠스랑/ 유홍준

 

 

 

화가 난 아버지가 쇠스랑을 들고 어머니를 쫒아갔다 화

가 난 눈썹이 보기 좋았다 1975년이었다 입동(入冬)이었다

내 그리운 쇠스랑........

 

 

마당 저쪽 두엄더미에는 허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 저녁의 슬하, 2011. 창비

 

 

 

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실천문학. 2004

 

*        *          *

 

 

남자들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법은 어떠할까?

 

 

흔히 이전 시골집엘 가면 대청 마루위에 가족 사진이 걸려 있던게 생각납니다.

할머니집, 작은아버지집도 그랬거든요.

구식 결혼식 사진, 아이 돌사진, 친지들 사진...

그 시절에는 사진 한번 찍기가 쉽지않아서 사진도 귀하던 시절이었지요

 

유홍준 샘 산청 생초, 비어 있는 집엘 간 적이 있습니다.

모친이 살고 계시다가 요양병원 들어가신 이후 비어 있는 집이었지요.

 

조그만 방 하나에서 조부, 조모, 아버지 사진이 벽면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이 굵은, 특히 눈썹이 인상적으로 시꺼멓고 진해서 인상이 강한 어른들이셨습니다

유샘 역시 눈썹이 짙고 굵으니 아버지의 눈썹을 닮으신 모양입니다.

 

남자분들이 어머니를 기억하는 상황과 同姓인 아버지를 기억하는 상황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쇠스랑을 든 아버지가 어머니를 쫒아가는데 그 화가 난 눈썹이 보기 좋았답니다. 

시 공부 중에 간혹 들은바에 의하면 실제는 아버지께서 유(柳,遊)하고 생활에 별 관심없는 선비스타일이고

어머니께서 생활력이 강하고 억척스러우셨다 합니다.

유샘에게서 부모님의 정신적 유산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버지 혹은 남편이 사회적이다, 가정적이다

훌륭한 남편과 어진 아내, 현명한 아내 이런 부부에 대한 평가는 서로 상대적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소크라테스 부인은 대표적인 악처로 알려졌으며 그와 관련한 일화가 많은데 당사자 입장에서

그렇다고 쿨하게 인정할지 억울하게 생각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억울 할거란 생각도 듭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 현실생활'입니다. 매일 입에 밥이 들어가야 하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후세에 세계적인 현자이자 철학자로 평가받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

을 못해주면 부인은 결국 생활전선에서 두 몫을 해내야하니 세상이 남편을 존경한들 부인으로서는 살아가는데

하등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일로 일생을 허비하는 듯 보이는 남편이 최소한 존경스럽기는 어려울 듯 싶네요

인간이 밥으로만 살지는 않지만...' 철학'은 멀고 ' 호구지책'은 가까우니

타고난 부를 갖지 않았고, 후원자가 없다면 남편의 무능은 부인이 더 억척스럽고 독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예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소크라테스 선생의 업적에서 그 공의 절반은 부인의 희생이다고 생각 해 볼 수도...

 

공광규 시인의 ' 소주병' 역시

시는 짧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기억하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