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유골, 박서영 시곗바늘

생게사부르 2017. 3. 17. 13:02

유홍준


유골遺骨


당신집은

무덤과 가깝습니까

요즘은 무슨 약을 먹고 계십니까

무덤에서 무덤으로

산책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웅크리면 무덤, 무덤이 됩니까

무덤 위에 올라가 망望을 보았습니까

제상祭床 위에 밥을 차려놓고
먹습니까

저는 글을 쓰면 비문碑文만 씁니다

저는 글을 읽으면 축문祝文만 읽습니다

짐승을 수도 없이 죽인 사람의 눈빛, 그 눈빛으로
읽습니다

무덤 파헤치고 유골 수습하는 사람의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잘 꿰맞추는 사람이지요

그는 살 없이

내장 없이, 눈 없이

사람을 완성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무덤 속 유골을 끄집어 내어 맞추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맞추어 놓은 유골

유골입니다

 

 

 

박서영


시곗바늘


삽 세자루가 누군가의 얼굴을 파내고 있다
사라지는 시간의 작은 외침이 재깍재깍 들린다

눈썹을 밀고, 눈알을 파내고, 코와 입을 지웠다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지운 얼굴을 또다시 지운다

 

삽은 또 구덩이를 판 후 물컹한 것들을 파묻기 시작한다
사라지는 시간의 작은 외침이 퍽퍽퍽퍽 들린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저 둥근 얼굴을 누가
자꾸 파내고 있는가

피 한방울 없이 깨끗하게 해치우는 놀라운 솜씨
사랑을 밀고, 증오를 밀고, 이별과 공포를 지운다

잘 들어보시라
당신의 얼굴을 삽 세자루가 돌아가며 파내고 있다
그는 매장과 발굴의 전문가가 틀림없다 

 

 

 - 시집<좋은 구름>실천문학사

 

 

 

*       *       *

 

 

삶과 죽음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손'으로 동일체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태어난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묵묵히 살아내야합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삶에만 급급하여 살아서 누리는 권력, 재력, 명예에 집착하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인간 삶의 결말은 결국 죽음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로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내공이 많아 보이시는 본당 수녀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젊은 시절, 성당 생활에 충실한 한 젊은 형제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 수녀님 그렇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사시다가 나중에 하느님이나 천국 없으면 억울해서 어떡해요?"

 

수녀님 대답,

 

" 그러면 천국 준비 안하고, 살다가 나중에 죽어서 있으면 어떡 할건대"

 

50: 50 무슨 도박 같네요만

평생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신 분들은 죽음을 받아 들이는 태도가 다르지 않을까요?

차분하게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실 거 같습니다.

 

종교인들을 제외하면

일반인들 중에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의사, 장례지도사들일테고

직업이 아니지만 비교적 죽음에 대해 많이 통찰하는 사람들 부류는 철학이나 문학하는 사람들일 거 같아요.

문학의 큰 주제가 어차피 "삶과 죽음"의 테두리 안 일테니까요

 

며칠 전에 동갑내기 외삼촌 장례 치르고 왔습니다.

 

동갑내기 외삼촌이라함은 저와 나이가 같다는 얘기니 사실 친구같은 세대인데 쓸데없이 촌수만 높았던 외삼촌입니다.

딸이 어릴 적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 무슨 할아버지가 머리가 쌔까매?  "

어린 생각에 엄마와 같은 나이에 할아버지라하니 수긍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작년에 뵀을 때 특별히 아파보이지는 않았는데 이미 간이 나빠져 있었고  건강검진을 하고 조치가 필요 함을 아시고도

하필 외숙모께서도 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당신이 더 급한 줄 모르고 급성으로 진행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조카가 현대계열사 근무하니 회사에서 상조팀을 보내 돌아가신 분 예우나 장례의식을 말끔히 추진 해 주긴 했습니다만

이제 여행도 좀 다니고, 아들이 어버지 차를 하나 새로 바꿔드릴테니 새차 알아보라 한다고 흐뭇해 하시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아들들 효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고 떠나셔서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입관 하는 거 다 지켜 보았고, 부천에 화장터가 없어 인천으로 가서 화장하는 시간 두시간 남짓에

한 분 존재가 재로 화하는 모습, 장인장모 계시는 납골 묘원에 안장하는 마지막 길 함께하고 왔습니다

 

아직 한창일 나인데...그야말로 조실부모하고 초등학생 시절 누나인 우리집에 와서 함께 지냈습니다만

엄마마저 39세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으니... 의지가지 할데없이 외롭게 사셨던 일생이셨습니다.

 

이승에서 다 못한 부모 정 듬뿍 받으시고 이미 먼저 가 계신 누님들과 다시 좋은 세상 사셨으면 하는 바람과

마음 씀씀이 넒은 저보다 나이작은 외숙모, 아직 출가전인 조카들 잘 지켜주십사고 기원해 봅니다. 

 

詩에서는 유골이라합니다만 요즘은 유골로 매장하는 경우보다 화장을 하고 가족 납골묘나, 평장을 해서 가족를

묘로 만드는 추세입니다.

후손들이 살아 나갈 좁은 땅 덩어리,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장례문화의 흐름일 것입니다.

 

생명의 탄생보다 소멸쪽에 가까울수록 '본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아집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로 다시 한번 포스팅 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동갑내기 외삼촌의 영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