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행운목, 새들의 눈꺼풀

생게사부르 2017. 5. 14. 08:59

유홍준


행운목


행운은, 토막이라는 생각
행운은-고작
한 뼘 길이라는 생각

누군가 이제는 아주 끝장이라고
한 그루 삶의
밑동이며 가지를 잘라 내던졌을 때
행운은 거기에서 잎이 나고 싹이 나는 거라는 생각
잎이나고 싹이 나는 걸
발견하는 거라는 생각
그리하여 울며 울며 그 나무를 다시 삶의 둑에 옮겨 심는
거라는 생각

행운은- 집집마다
수반 위에 올려 놓은 토막이라는 생각

 

 

 

새들의 눈꺼풀

 

 

 

새들이 쓰는 말은 얼마되지 않는다

사랑, 자유, 비상, 행복, 그리움, 뭐 이런 말들이다 그런데 사

람들 귀엔 다 같은 말로 들린다

 

새소리가 아름다운 건 상투적인 말들을 쓰기 때문.

 

탁구공만한 새들의 머리통 속에

독특하고 새로운 단어가 들어 있으면 얼마나 들어 있으랴

 

새들은 문장을 만들지 않는다 새들은 단어로만 말한다 새

들이 문장을 만들면 그 단어는 의미가 죽어버린다

 

새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갈수 있는 건

가벼운 뼈 때문이 아니

탁구공처럼 가벼운 머리를 가졌기 때문,

사람도 새들만큼 가벼운 머리통을 가지면 하늘을 날 수 있

을지도 모른다

 

죽은 새의 눈꺼풀을 본 적이 있다

참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 맞아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 사람의 눈매가 그랬다 치매병동에

원한 그 사람의 눈빛이 그랬다 날마다 빈 대문간에 나와

앉아서 먼 풍경 주워담는 노인네의 눈빛이 그랬다

그들이 쓰는 단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날아갔다

 

죽은 새의 눈꺼풀이 애틋했던 건

살면서 쓰던 단어들이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

 

 

*      *      *

 

 

모처럼 師傅 유홍준 선생님의 시... 늘상 그 자리에 계셔주시길

 

내일 스승의 날이네요.

여러 학습 공간에서 스승과 제자의 형태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 스승과 제자' 라는 말이 서로 겸연쩍어지는 용어여서

' 교사와 학생' ' 학교' 의 의미에 대해 한번 되새겨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성인들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찾아다니는 "평생학습' 공간에서

'스승과 제자' 가 찾아 질 듯 합니다.

생업을 위한 훈련 공간이든 취미나 기호생활을 위해 선택한 공간이든

이전의 ' 도제 ' 같이 장인정신이 바탕이 되는 전문성을 갖추는 곳에서 오히려

스승과 제자가 존재 할 듯 합니다. 

 

가정의 달 5월...

어린이, 청소년, 어버이...빠진 가족들

공기나 물처럼 당연했기에 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있어 줄 것 같지만

깨어지고 상처 받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절히 알게 되는 ...

평소 무탈함이 행복이고 공기처럼 일상인 가족도 서로의 역할이나 의무를 잘 해야 유지될 수 있는

행복의 공간입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서로 이해와 사랑이 넘쳐야 한다고 전제하지만

당연함이 꼭 당연하지만 않기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종종 우리는 잊어버리고 소홀하고 섭섭하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저 부터 반성합니다.

 

사람들은 '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지만

사실 세잎 클로버가 '행복'이라지요.

일상이 행복한 속에서 간혹 '행운'도 한번 씩 찾아오면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겨 더할나위 없겠지만

행복과 행운을 다 가지고 싶다면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일테고요.

 

'행운'은 토막이고, '행복'은 발견하기 나름이니

일상에서 행복을 많이 발견하고 또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행복한 시간이 많아지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한층 '행복'에 다가간다는 생각입니다.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무릉도원'...' 이름이야 무엇으로 붙이든

살아서 '천국' 을 누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을 다스리는 역량에 달린 것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