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따뜻한 흙
잠시 앉았다 온 곳에서
씨앗들이 묻어 왔다
씨앗들이 내 몸으로 흐르는
물길을 알았는지 떨어지지 않는다
씨앗들이 물이 순환하는 곳에서 풍기는
흙내를 맡으며 발아되는지
잉태의 기억도 생산의 기억도 없는
내 몸은 낯설다
언젠가 내게도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 뿌리에서 꽃을 보려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는 그 마음을 가질수 없는
내 고통의 그곳에서
샘물처럼 올라온다
씨앗을 달고 그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담쟁이
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나를 가두었던 것들을 저 안쪽에 두고
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지금도 먼데서 오는 바람에
내 몸은 뒤집히고, 밤은 무섭고, 달빛은
면도처럼 나를 긁는다
나는 안다
나를 여기로 이끈 생각은 먼 곳을 보게하고
어떤 생각은 몸을 굳게 하거나
뒷 걸음질치게 한다
아, 겹겹의 내 흔적을 깔고 떨고있는
여기까지는 수없이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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