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떠나자 음악 소리가 들렸다/ 박정대
1ㆍ失
..그가 기타를 치자, 나무는 조용히 울음을 토해냈네. 상처처럼 달려 있던 잎사귀들을 모두 버린 뒤라 그 울음 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없지는 않았으나, 공복의 쓰라린 위장을 움켜쥔 낮달의 창백한 미소가 또한 없지는 않았으나, 결코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출가한 수도승의 머리 위에서 아무렇게나 빛나는 몇 점의 별빛처럼 그런대로 빛나는 음률을 갖추고는 있었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사랑이 아파서 그렇게 울고 있었는가, 텅 빈 귓속의 복도를 따라 누군가가 내처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느낌도 없이, 슬픔도 없이, 처음부터 그 울음 소리는 자신이 울음인 줄도 모르면서 음악을 닮아 있었네.누군가의 손끝에 걸려 있는 노래가 자신인 줄도 모르면서 아픈 상처의 살점들을 음표로 툭툭 떨구어 내고 있었네. 빗방울에 부딪혀 기타 소리는 멀리 가지 못하지만, 자꾸만 아래로 흘러가지만, 그 소리의 향기는 빗방울을 뚫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低音部를 조용히 연주하고 있네.
2ㆍ音
..누군가 떠나자, 음악 소리가 들렸네. 처음에는 그것이 떠나는 자의 발자국 소리인 줄 알았으나, 발자국 위로 사각거리며 떨어지는 흰 눈의 부드러운 속삭임인 줄 알았으나, 햇빛 한 점, 바람 한 조각 남겨 두지 않고 떠난 자의, 後景 속으로 밀려오는 것은, 경련하는 눈썹의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은, 거대한 幻의 물결이었네. 비록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떠난 것들의 길다란 그림자가 서로 부딪히며 어두워져 갈 때, 어둠의 중심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빛의 흔적들, 빛의 和音들. 보이지 않는 상처의 흔적들이 여적 남아서 추억의 힘으로 허공을 맴돌고 있었네. 허공에 입김을 불어, 몇 개의 電球를 환하게 밝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빚어내고 있었네. 아픈 것들만이, 뜨거운 것들만이 남아서 서로에게 스며들어 갈비뼈가 되고, 또 더러는 갈비뼈 속의 바다로 흘러가 덩그마니, 눈동자의 섬으로 돋아나고 있었네. 바람도 없는 깃발의 노래, 깃발도 없는 추억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네. 그 노래는 아름답지만, 그 노래의 끝에서 피어나는 새들은 눈부시지만, 누군가 다시 노래를 부르자, 새들은 조용히 소리를 물고 어디론가 날아오르고 있네.
박정대 詩集(세계사 시인선ㆍ81)
『 단편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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