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장미는 손님처럼
어느새 파장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장미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장미가 다니고 가신다
한번 다니러 오면 한 생애가 져 버리는 우리네처럼,
이승이란 있는 것 다 털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꽃술과 꽃잎을 다 털리고 가는 저 꽃들
그래도 말똥구리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고
빨간 입술의 늙은 여자들이 양산을 들고 그 사이로 걸
어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다니러 오셨는가
목책을 붙잡고 말라빠진 덩굴장미 한 송이 안간힘으로
피어 있다
다시 한 생애가 오기까지
다시 이 불가해한 시간대에 얼굴을 달고 태어나기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니고 가는 것들로 북적대는 장미원에는
함부로 늙어가는 꽃들
함부로 늙어 가는 여자들이 지천에 가득하고
젊은 남자가 서너살은 되어 보이는 딸 아이를 꽃 속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어서어서 커야지 할 새도 없이
봄여름을 알 수 없는 계절이
함부로 뭉쳐져서 빠르게 몰려오고 있다
별리
연꽃 떠난 연잎 위를 검은 물닭이 건너가네
잠길 듯 겅중겅중 뛰어가네
한 발이 빠지기 전에 나머지 발을 재바르게 올려놓네
연꽃이 건너 간 품새도 그와 같아
어제 내 눈을 어질러 놓던 연꽃들이
오늘은 검은 물닭처럼 다 건너가버렸네
꽃잎이 어둠에 잠기는 찰나를
숨어서 지켜 본 이가 있었던가
혼자 오래된 추억으로 가슴을 치던 이가 있었던가
목단밭 속에 붉은 발자국이 움푹움푹 패어 있네
그도 나도 연꽃으로
검은 물닭으로 살고 싶었으나
으스름처럼 너무 느리게 길게 걸어왔네
살찐 목단꽃 속에 숨어 흐느끼는 저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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