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문성해 장미는 손님처럼, 별리

생게사부르 2017. 5. 21. 01:31

문성해


장미는 손님처럼




어느새 파장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장미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장미가 다니고 가신다

한번 다니러 오면 한 생애가 져 버리는 우리네처럼,

이승이란 있는 것 다 털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꽃술과 꽃잎을 다 털리고 가는 저 꽃들

그래도 말똥구리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고

빨간 입술의 늙은 여자들이 양산을 들고 그 사이로 걸

어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다니러 오셨는가

목책을 붙잡고 말라빠진 덩굴장미 한 송이 안간힘으로

피어 있다

다시 한 생애가 오기까지

다시 이 불가해한 시간대에 얼굴을 달고 태어나기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니고 가는 것들로 북적대는 장미원에는

함부로 늙어가는 꽃들

함부로 늙어 가는 여자들이 지천에 가득하고

젊은 남자가 서너살은 되어 보이는 딸 아이를 꽃 속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어서어서 커야지 할 새도 없이

봄여름을 알 수 없는 계절이

함부로 뭉쳐져서 빠르게 몰려오고 있다

 

 

 

별리

 

 

 

연꽃 떠난 연잎 위를 검은 물닭이 건너가네

잠길 듯 겅중겅중 뛰어가네

한 발이 빠지기 전에 나머지 발을 재바르게 올려놓네

 

연꽃이 건너 간 품새도 그와 같아

어제 내 눈을 어질러 놓던 연꽃들이

오늘은 검은 물닭처럼 다 건너가버렸네

 

꽃잎이 어둠에 잠기는 찰나를

숨어서 지켜 본 이가 있었던가

혼자 오래된 추억으로 가슴을 치던 이가 있었던가

목단밭 속에 붉은 발자국이 움푹움푹 패어 있네

 

도 나도 연꽃으로

검은 물닭으로 살고 싶었으나

으스름처럼 너무 느리게 길게 걸어왔네

살찐 목단꽃 속에 숨어 흐느끼는 저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