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주
백 일 동안
꽃을 벗고 더 지독한 무엇이 되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동백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동백을 숨기려고 입술을 뭉갰는데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않는다고
침대 머리 맡에서
새들이 소란스럽다.
억지로 잠을 청해 누우니
별 대신 두 눈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밖은 환하고 나만 어둡다.
커튼을 젖히고
나무가 아직 거기 서 있는지
엿보고 싶지만
너와 마주칠까 나는 후퇴한다.
동백까지 가지도 못했으면서
서둘러 동백을 떠난다
빨래
어깨에 힘 빼고
팔도 다리도 빼놓고
얼굴마저 잠깐 옮겨 놓으면
어디 한번
구름이 다가와 팔짱을 끼어보고
바람이 구석구석 더듬다가 밀어버리고
달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
핼쓱한 얼굴을 얹어도 보고
훈장처럼 별들이
붙어 있다
사라진다
빠른 타자 속도로 빗방울이
댓글을 남기고 간다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
사람인듯 아닌듯
떠 있으면
<4월아, 미안하다> 2007.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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