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 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 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의 절반을 접어둘 것
아침
새떼가 우르르 내려 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 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 상자로 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사진출처: 옛그늘 문화유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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