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심언주 페이드인, 사과에 도착한 후

생게사부르 2017. 4. 13. 09:02

심언주


페이드 인


찔레꽃은 아무하고나 상처를 쓰다듬는다.

아무한테나 연고를 발라준다.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쳐라, 오른쪽 어깨에 걸쳐라 간섭이 심하다.

목이 하얗게 쉬어버린다.

아무래도 꿈속에서 꽃핀것 같다고 손등을 찌르는 자해
를 서슴지 않는다.

주렁주렁 링거를 매단 채 발레를 한다.

꽃잎을 뜯어 나비를 말린다

 

불러 세울까 봐 줄행랑을 친다.

 

 

 

사과에 도착 한 후

 

 

 

내가 오른쪽 볼과 왼쪽 볼을 내어주지 않으면

사과는 부풀지 않는다.

흥분이 극에 달해야만

나는 향기로워진다.

이제껏 구분되지 않던 냄새를 드러내며 비로소

둥글어진다.

 

너는 노을이 아름답다지만

누가 칼날을 세우기라도 하면 핏줄들이 모두 숨어버린다.

모처럼의 흥분이 사그러질까봐 나는

칼끝에 집중한다.

 

사과는 사과를 유지하려 애쓴다.

둥근사과는 이미 잘린 사과일지 모른다.

사과 노릇을 하려는 사과일지 모른다.

 

창 너머로 나란히 기차가 가고

덜컹덜컹 배경을 자르면서 가고

칼이 지나가면서 고요해지는 저녁이다.

나는 환부를 움켜쥐고 몸을 뒤튼다.

칼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면서

너는 노을이 아름답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