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 김희준
나는 반인족
안데르센의 공간에서 태어난 거지
오빠는 속 눈썹이 가지런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잠그면 매
일 같은 책을 집었다 모서리가 닳아 꼭 소가 새끼를 핥은 모
양이었다 동화가 백지라는 걸 알았을 땐 목소리를 외운 뒤
였다 내 머리칼을 혀로 넘겨주었다는 것도
내 하반신이 인간이라는 문장,
너 알고 있으면서 그날의 구름을 오독했던 거야
동화가 달랐다 나는 오빠의 방식이 무서웠다 인어는 풍성
한 머릿결이 아니라고 아가미로 숨을 쉬었기에 키스를 못한
거라고 그리하여 비극이라고
네가 하늘을 달린다
팽팽한 바람으로
구름은 구름이 숨쉬는 것의 지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누워서 구름의 생김새에 대해 생각하다가 노을이 하혈하는
것을 보았다 오빠는 그 시간대 새를 좋아했다 날개가 색을
입잖아, 말하는 얼굴이 오묘한 자국을 냈다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오빠에게 오빠의 책을 읽어준다 우리가 읽어냈던 구름을
베개에 넣으니 병실 속 꽃처럼 어울린다 영혼이 자라는 코
마의 숲에서 알몸으로 뛰는 오빠는 언제나 입체적이다 책
을 태우면서 연기는 헤엄치거나 달리거나 다분히 역동적으
로 해석되고
젖은 몸을 말리지 않은 건 구름을 보면 떠오르는 책과 내
사람이 있어서라고
너의 숲에서 중얼거렸어
- 2017.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당선작
1994. 경남통영.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 * *
비슷한 세대로 태어나 비슷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기를 거치면
공감대가 많아서 만남이 즐겁고 대화가 즐겁습니다.
사춘기 시절, 서로 통하는 친구들과 죽어라 함께 어울려 다니는 일이며
나이드신 세대들이 인생경험을 함께해 온 비슷한 연배들과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며
끼리끼리 어울리는 일 등이 그러합니다.
가치관이나 신념까지 같아서 정신이 서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더 이상 좋을 수 없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날씨나, 음식얘기, 기호나 취미, 패션, 여행 등...서로 통할 수 있는 얘기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시 감상에 있어서 세대차이가 나도 30-40대 시인들까지는 공감적 사유나 서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아들 나이인 20대로 내려가면 ?
아니래도 늦게 시작한 시 공부라 ' 젊음'이 빠져버려 늘 아쉬운데
위 '김희준의 시' 정도 되어버리면....어렵습니다.
어떻든 나이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서는 없으니
1920년생, 30년생, 40년생 등 나이드신 분들의 돌아가신 자리를 차지 할(메울) 사람들은
젊은 시인들이 되겠지요.
이십대에 이미 ' 시인' 의 길로 들어섰으니 나날이 승승장구 발전할 것입니다.
* 인생은 참으로 알수 없어서
성장기 ' 준비된 시인' 이 분명했을 이 시인
2017년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며 장래가 촉망되던 이 시인
하늘의 猜忌와 천사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는지
2020. 7.24 빗길 교통 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더니...
유고시집 '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
요절한 천재시인으로 우리 시 역사에 한 점을 남기게 되었네요.
스물일곱이 온통 詩로 산 인생... 별이되고 천사가 되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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