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물들/ 서 안나
피아노가 부서졌다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가 쏟아졌다
피아노는 피아노라는 이름에서 뛰어나왔다
피아노는 피아노를 끊었다
도를 누르면 나무와 바람소리가 났다
실패한 건반은 다정하다
학생들은 노래하고
선생님은 마약쟁이처럼 손을 떨며
고장 난 피아노로 노래를 가르쳤다
계약이란 악보처럼 단단했다
아이들은 간혹
망가진 피아노 뒤에서 입을 맞추곤 했다
우연히 당신 옆 모습에서
우주를 발견하듯
교문을 뛰어넘는 학생들은
라 혹은 도 음으로 양귀비처럼 싱싱하다
성대를 수술한 애완견의 침묵처럼
음악실은 간혹 춥기도 했다
피아노를 열면 건반 안쪽에
거미새끼들이 흩어졌다
파열이란
저녁을 찢고 아침의 얼굴을 만나는 것
피아노를 벗어난 피아노
교문을 빠져 나온 아름다운 다리들
잉여의 세계가 아름답다
시사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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