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사람을 쬐다

생게사부르 2016. 12. 10. 10:17

유홍준


사람을 쬐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 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씨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 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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