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도종환-종례시간

생게사부르 2015. 12. 9. 20:34

도종환 1

종례시간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번 씩 안아주고 가거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 해 주다 가거라

애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 듯
과꽃 분꽃에 입 맞추고 가거라

애들아 곧장 집으로 가 방안에 갇혀있지 말고
잘 자란 볏 잎 머리칼도 쓰다듬고 가고
송사리 피라미 너희 발 간질이거든
너희도 개울물 허리에 간지름 먹다가 가거라
잠자리처럼 양팔 날개하여
고추밭에 노을지는 하늘 쪽으로 날아가다 가거라.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