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유홍준 북천-무당

생게사부르 2016. 11. 9. 00:05

유홍준

 

 

 

북천

 

 

구름 같은 까마귀 떼 저 하늘을 쪼았다 뱉는다 하늘밖에 더 뜯어먹을 게 없는

 

눈뜨지 마라 파먹을라 冬安居에 들어간 하늘의 얼굴이 산비탈처럼 말랐다 두 볼에 골짜기가 파였다 하늘 눈(目)에서 피가 흐른다 서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린다.

 

주둥이에 피를 묻힌 까마귀들이 앞산 넘어간다 금방, 캄캄해진다

 

- 시집 <나는, 웃었다> (창비, 2006년)

 

 

 

 

 

북천
  - 무당


작두는 녹이 슬고
이파리 없는 대나무 가지는 흔들리지 않고
복사꽃 피는 북천 개울가에
폐허가 된 집이 있다
무당이 살던 집이다
일년에 딱 한번
그 외딴집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복사꽃이 물들이는데
누군가 하나는 꼭 홀려 그 외딴집으로 간다
꽹과리며 징이며
소리 나던 방울은 바닥에 버려져 있고
녹아 내리던 촛농은 녹아 내리던 채로 멈춰서 십년을 버티고 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똑 같이 흉내내던 사람이었다
반말을 쓰던 사람이었다
대접 속에 든 물을
솔가지 잎으로 찍어 뿌리던 사람이었다
마침내 복숭아나무 속으로 들어가 복숭아나무가 된 사람이었다
사람을 데려가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