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안도현 단풍나무, 평교사를 위한 시

생게사부르 2015. 12. 4. 15:25

안도현 2.

 

 

단풍나무

 

둘러봐도, 팔짱 끼고 세상은 끄떡없는데 

나 혼자 왜 이렇게 이마가 뜨거워지는가

나는 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서

마치 몸살 끝에 돋는 한기(寒氣)처럼 서서

어쩌자고 빨갛게 달아오르는가

너 앞에서, 나는 타오르고 싶은가

너를 닮고 싶다고

고백하다가 확, 불이 붙어 불기둥이 되고 싶은가

가을날 후미진 골짜기마다 살 타는 냄새 맑게 풀어놓고

서러운 뼈만 남고 싶은가

너 앞에서는 왜 순정파가 되지 못하여 안달복달인가

나는 왜 세상에 갇혀 자책의 눈물 뒤집어쓰고 있는가

너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네가 되고 싶은가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

봄이 오면 이마 위로

새순 소록소록 돋고

가을이면 겨드랑이 아래로

가랑잎 우수수 지리

그런데 만약에

저 숲을 이룬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

 

 

평교사를 위한 시


 

 

- 전북교사 협의회 창립대회에 부쳐

 

평교사여 그대의 외로운 이름을 부른다

갈채도 함성도 없는 교실에서,

공문서 철이 가득 쌓인 담배 연기 교무실에서,

보충수업 심야자율학습 형광등 불빛에서,

비틀거리는 자전거 어두운 퇴근길에서,

울분이 가슴을 적시는 선술집에서,


평교사여

그대 성스러운 이름을 부른다

아이들 맑은 눈망울 속에 담긴 그대,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대,

옛 제자의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떨리는 그대,

오직 평생의 길 홀로 끗꿋이 걸어가는 그대,


평교사여

이 땅에서 제일 외로우나

제일 성스러운 이름 위에

지금은 당당히 불을 밝힐 때,

참 등대가 되어

아이들의 뱃길 밝혀줄 때,

새벽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워 그 상처 아물기 전에

기여코 당도하리니


싸움 끝에 새날이 와서

누가 이 세상을 온몸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을 묻는다면

그이는 바로 다름 아닌

평교사라 대답하리

분명코 대답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