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철
봄날과 시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나해철·의사 시인, 1956-)
나희덕
어느 봄날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나희덕·시인, 1966-)
봄 앞에서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
태어나고 있다
세상만물이 하나같이
태어나고 변화하고 소멸해 가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치 앞에서
어리석은 사람아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디에 네것, 내것이 있드냐
죽었다가도 다시 사는
봄 앞에서 그저 봄을 살고
봄을 노래하기에도
하루해는 짧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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