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마산에서 살기

마산 원도심 탐방 후기 1

생게사부르 2020. 11. 5. 18:07

마산 원도심(창동, 오동동 , 어시장 일대) 1

 

 

2020. 창원 도시재생센터 도심탐방대

- 마산 원도심(창동 오동동 어시장)을 돌아보고

 

 

2020년 창원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관하는 도심 탐방대가 출발했습니다. 출발 전날 시민 문화공간 발굴단에 함께 참가하는 센터해설사 김경년씨가 카톡방에 그 내용을 올리자 마자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참가하겠다고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사실 이미 10여년전 쯤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엄청 참가하고 싶었음에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요. 현직에 있을 때 였는데 평일인지 토요일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체력적으로나 맘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했었습니다. 대신 다짐을 했지요. ‘ 퇴직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실천해 봐야지’ 하고

예상치 못하게 그 기회가 왔으니 냉큼 가야지요.

 

1031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총 6회에 걸쳐 실시되는 탐방의 첫회는 마산의 원도심출발지역인 창동과 오동동, 어시장일대입니다.

 

코스는 창동 조창터 -> 원초적 화교타운 -> 원동무역 건물 -> 매립 경계선 -> 어시장 일대-> 오동동 김명시 장군생가 터 -> 마산 3.15운동 시발지와 마산교도소터로 소요시간은 10:00에 모여 2시간 30분 정도로 탐방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해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첫회 모이는 장소가 의미심장한데요. 옛 조창터였던 제일은행 앞입니다. 주관처에서 먼저 나와 있었고 집결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탐방에 필요한 계획서와 자료가 든 가방을 받았고 6회 중 2회에 걸쳐 탐방대장 역할을 맡으신 유00(전 경남대 교수) 교수님 도착하시고 업무담당자를 포함하여 20명 남짓 구성원이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예비 설명을 듣고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후’ ‘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산창(조창)위치와 마산 원도심(옥가실 블로그)

 

대부분 근대 도심형성은 이전부터 내려오던 동헌이나 객사등 관아나 행정부서를 중심으로 확산됩니다. 그러나 마산은 관보다 대왜관계의 군사 방어나 국가의 세수확보를 위한 조창으로 역할이 이어져 내려온 탓에 민간인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으로 발달합니다. 그래서 그 중심지였던 조창터가 원도심의 출발지가 되는 셈이지요. 마산이 다른 도시들과 좀 다른 형태의 발전과정을 겪었다는 얘기는 마산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법령에 따르는 다소 딱딱한 정치나 행정보다 백성들이 역사의 부침浮沈에 의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생계나 생업을 위해 마을이 형성되는 역동성이 강한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산은 골포국이나 통일신라 합포현, 고려시대 금주(김해)의 속현이었을 때에 비해 고려 후기 려원 연합군의 일본 원정 출발지로 역사에 부각됩니다. 정벌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준비와 지원에 애쓴 공로로 1282년 합포가 회원현으로 승격, 현령이 파견되고 그때 쌓은 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여겨지는 이름들이 동성, 서성, 남성, 북성, 성호 등입니다

 

조선 전, 중기 군현제 개편을 겪으면서 창원부, 창원도호부를 거쳐 1601(선조 34)에 대도호부로 승격한 마산포는 1760년 개창된 사천의 가산창과 더불어 경남 중부지방 최대의 조창이 되었습니다. 그 조량을 관할하기 위해 유정당惟正堂을 세웠는데 그 장소가 현 제일은행 일대 사거리입니다. 개항 이후 창원 감리서가 설치되어 잠시 마산포 개항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만 1912년경 일제가 경상남도 기업전습소를 설치하기 위해 이 건물을 상남동으로 이전했다고 하며 현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근대 이전 하나의 포구에 불과했던 마산이 한때 전국 7-8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899년 개항장으로부터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그 이전 1760(영조 36) 조창을 설치해 낙동강 서남부 일대 9개읍(뒤에 8개읍)의 조세를 수납하며서 경상도의 해안 상업 중심지로 성장 했다는 것, 1808년 서영보 심상규 등이 왕명으로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만기요람은 마산장을 경상도 최대 장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탐방대가 발 딛고 선 조창터부터 창동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기까지 변천과 그 유래, 원초적 화교 타운과 국내에서 화교의 정착이 어려웠던 대내적 이유, 어시장의 형성과 특성, 추운 북방 출신 백석 시인이 짝사랑 했던 여인, 남쪽 통영의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 걸었을 구마산역에서 선창까지의 거리, 마산이라는 독특한 도시형성에 기여했던 원동무역과 비밀한 독립자금 모금과 전달 등...

 

다소 쌀쌀한 날씨였고 구성원들 면면이 중년을 넘어서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탐방대의 의욕은 넘쳐났습니다. 설명하는 분이나 듣는 분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거리에 선채로 듣고 있다가... (이러다가 오늘 하루로 부족하겠는데요)하는 생각이 들 즈음, ‘ 일단 옮겨 볼까요? ’ 하는 소리에 다들 동의했습니다.

 

조창터였다는 이전에 세운 사각 돌 기념석의 글씨가 지워져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그 옆에 입간판으로 세운 최근의 안내판이 도시재생의 의미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산은 바다와 해변의 낭만, 자연스런 해안선의 굴곡을 빼앗기는 대신 매립을 통한 산업화와 근대로의 발전을 선택했습니다. 매립의 경계가 되는 부분을 눈여겨 보라는 안내를 받으며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돌 표지석 옆에 다시 세운 안내문

 

이론으로만 알던 내용 답사를 통해 궁금증이 많이 풀렸습니다. 화교타운이었을 거리에 왜 중국집이 많았는지...자주 드나들던 어시장이 19세기 서해안의 강경, 동해안의 원산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규모를 자랑 했다는 사실, 어시장에 남아 있는 100년이 넘었을 전국 유일의 객주건물은 이제 내부를 공개하기 민망할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도 탓이기도 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한 곳이 상공회의소나 경제인 연합일텐데 왜 자신들의 산 역사인 일부를 저렇게 방치해 놓았을까? 시민이야 뜻이 있어도 자금의 흐름을 모르고 그걸 아는 사람들은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 지난 과거에는 별 관심이 없고...

 

1919년 옥기환, 명도석 선생이 합자하여 설립한 원동무역 역시 100년이 넘고 있건만...

그 부근을 지나 다녀도 원동무역 건물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이유도 알았습니다. 표지석이 도로에 세워진 자동차 뒤에 숨어 있었고 표지석 위로 걸쳐진 전기선은 저녁에 입간판이 될 풍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간판이 일어서면 또 묻혀서 보이지 않을 테고요.

 

 

 

전국에서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객주 건물...곧 없어질지도

 

 

남녀를 통틀어 대한인의 기개를 보여준 분, 백마 타고 만주 벌판을 누비던 김명시 장군의 생가터는 사라지고 없고 입간판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험한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에서 살아 남았으나 이후 벌어진 이념분쟁의 벽을 넘지 못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 새기게 했습니다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 생가터 안내문

 

코로나로 일상의 제약을 받으며 시작한 202011월을 보내는 오늘, 우리 마산은 여전히 정의를 실천하는 시민정신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거 맞겠지? 자문일지 확신일지 ... 이 아니라 백성들이 역동적으로 살아 왔기에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3.1운동, 3.15 부정선거, 부마항쟁에 학생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지 않았을까? 다소 싸늘한 날씨, 도심을 걸은 피로는 따끈한 탕이 마련된 정갈한 점심을 먹으며 확 날라갔습니다.

 

‘ 2차 탐방은 3.15 의거 탑에서 시작합니다.’ 멘트를 마무리로 돌아오는 길, 뿌듯한 발걸음과 함께 조태일 시인의 국토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일

숨결이 다 타 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 밖에 없는 일

 

- 조태일 국토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공기나 물과 같아서 늘 가까이 있습니다. 특별히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러나고요. 매일 딛고 다니는 우리의 발밑에 앞서 살아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닳고 닳은 족적이 있습니다, 이전 세대가 흘린 피땀의 흔적이 이 골목 저 구석에서 다 살아 숨쉬고 있다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한다면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일상이 너무 바쁜가요? 매일 스쳐 지나다니면서도 관심 갖지 않아서, 몰라서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세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역사와 그 공간을 찾아 보는 일을요. 뜻이 있으면 기회는 여러 방향에서 여러 방법으로 다가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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