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안광숙 멸치똥

생게사부르 2019. 11. 19. 17:37

 

멸치똥/ 안광숙


멸치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 막힌

삶보다 긴 주검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바다의 비밀을 까발려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나는 멸
치똥

죽은 바다와
살아 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 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모두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 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잘 비운 주검 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 2019. 평사리 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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